시대가 변하니까,
나는 전문대를 졸업했다.
따로 편입이나 학위를 더 이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그래서 꽤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내 나이는 고작 22살이었다.
처음에는 청년인턴으로 시작했다. 그때 한참 청년인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때였고, 내가 청년인턴을 할 때엔 그냥 인턴기간으로만 채용해도 됐었다. 다음 해부터는 청년인턴이 수습기간인 셈이고 그 후에는 평가 후 정규직 전환 전형으로 바뀌었다. 그 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졌었는지 청년인턴이 끝나고 나니, 마침 생긴 육아휴직 대체 계약직 자리로 2년을 그 회사에서 더 일했다. 첫 회사는 공공기관이었는데 정규직과 계약직의 차이가 미묘하게 꽤 있었다. 명절에 선물이 안 나온다던가, 노조가입이 안된다던가, 시간 외 수당을 핑계로 계약직이 정규직보다 야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던가... 그중 제일 싫었던 것은 내가 아무리 이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n 년을 일해도 정규직으로 입사하려면 다시 처음부터 채용과정을 지나야 했고, 그 전의 계약직 경력은 무용지물이라 다시 신입 1년 차부터 시작이었다. 내가 먼저 회사에 들어왔지만 다시 정규직으로 입사하면 내 다음에 들어온 사람들이 전부 선임이 되는 이상한 구조였다. 그래서였나, 정규직이 되고 싶은 욕심이 전혀 없었다. 아니, 계약직으로 몇 년이 지나도 아직 어린 내 나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계약직으로만 3년을 일했는데, 다시 계약직 제의가 들어왔다. 이렇게는 계속 미묘한 차이를 겪어도 부당하다 말하지 못하는 계약직으로만 남을 것 같아서,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계약직과 정규직에 연연하지 않았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재미있게’할 수 있느냐였으니까.
그래서 그다음 직장도 계약직이었고, 그다음 직장도 계약직이었다. 오히려 좋은 점도 있었는데,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그 후를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다음을 준비할 기간이 주어진다는 부분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언제까지 한국에서 계약직일 수는 없었다.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입사하려고 준비하고, 면접 보면서 스스로에게 ‘나는 나를 조금 더 믿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해줬다. 그렇게 처음 정규직이 되었다. 그렇지만 엄청 좋거나 뿌듯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1년 동안 코로나가 터졌고, 그래서 모든 일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멈춰졌다. 그렇지만 나는 경력 정규직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내 능력을 증명해내야 했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는지, 나에 대한 평가가 이미 끝난 시점이었다. 그 회사에서 단 한 번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나는 병을 얻었다. 매일 퇴근하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고 일했지만, 상사들에게 나는 유능하지 못한 경력직이었다. 아마도 내 몸이 그 평가를 이미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연차가 나보다 더 있는 동료가 내게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지 않은 게 너의 가장 큰 단점이야, 큰 그림을 보지 못하니까. “라고 했다. 그 말이 아직까지 마음에 남아있었는데, 얼마 전 다른 곳으로 인사발령받은 그 동료가 내게 “여기 한 곳에서만 꽤 오래 일한 직원이 있는데, 일을 너무 못해. 여긴 너처럼 경험이 다양한 직원이 필요해.”라고 했다.
시대가 원하는 인재가 변했다는 걸 체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내 단점이었는데,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지 않은 경험이 내 장점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지나온 지점들을 어떻게 이어서 보여줄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 것 같다. 계약직, 정규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곳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그 후에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지를 잘 설명하면 나는 시대가 원하는 인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자기소개서보다 포트폴리오가 중요한 시대가 온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