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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퍼 May 03. 2023

fit이 다르다는 것

자발적 퇴사의 가장 큰 이유

자발적으로 회사를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대표와 내가 맞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대표와 나, 그리고 직원 한 명. 세 명이서 일하는 아주 작은 조직이었기 때문에 맞지 않는다는 걸 자주, 명확히 체감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안 맞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나름 잘 맞았고, 대표가 원하는 부분을 내가 채울 수 있으니 잘 맞는 동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료가 된 지 10개월쯤 지났나? 일정이 너무 폭풍같이 밀려서 비는 일정에 연차도 아닌 반차를 사용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반차 사용하겠다고 했더니 이유를 묻는 대표에게, 나는 그동안 정이라도 들었는지 당연히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하며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했다. 내 대답을 듣더니 대표는 쓰라고 하면서도 표정이 한없이 구겨졌고,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별 문제없겠지 생각했다. 


해야 할 일이 계속 쌓여서 하나씩 처리하고 있는데, 대표로부터 긴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써퍼님, 휴가는 1주일 전에 얘기해야 하는 것 알고 있죠? 커뮤니티 참여는 본인이 선택한 일이고, 제가 저번에 일정도 한 번 조정해 드렸잖아요. 일에 지장이 가는 건 옳지 않다. (블라블라)"


그 주에 나의 일정은 [월요일 외근, 화요일 커뮤니티 참여, 목~금요일 지방 출장, 일요일 지방출장]의 일정이었다. 대표는 그런 나의 일을 다 알고 있으면서 '일하는' 일정은 빼고 '커뮤니티 참여'에만 방점을 찍고 개인적인 일정으로 일에 지장을 주는 직원으로 나를 낙인찍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반차 사용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민폐를 끼치는 직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쉬라고 했으니 그 일정은 쉬세요."였다. 그래놓고 쉬라고 한 그날 빠질 수 없는 회의 일정을 잡았다. 그래놓고 "그 회의는 저 혼자 참여할 테니, 써퍼님은 쉬세요."라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일하는 방식과 대표가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자주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같은 말에도 대표가 이해하는 워딩과 내가 이해하는 워딩이 달랐다. 하지만 그 후로는 구구절절 솔직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나는 더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계속 엇갈리고, 비틀어졌다. 


어느 정도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고 잠시 숨돌리던 12월, 직원이 휴가인 어느 날, 갑자기 대표가 티타임을 하자고 했다. 그러더니 나더러 "써퍼님, 요즘 왜 그래요?"라고 물었다. 왜 그래요?라는 물음도 놀라웠지만, 요즘이라는 단어도 놀라웠다. 3개월이 요즘이 될 수도 있구나. 


고민했다, 어디까지 솔직해도 될까, 어디까지 말해도 될까. 그럼에도 나는 잘하고 싶었고, 유능한 직원으로 평가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도 입을 다물어도 될 것을 입을 열어 솔직히 얘기한 걸 보면. 휴가사용 문제와 그 후에 일로 납득되지 않던 부분들을 얘기했다. 대표의 반응이 내가 원하는 반응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서로 더 나은 방향을 위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나름 잘 이야기가 끝난 듯싶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대표가 내게 일을 넘기는 방식은 동일했고, 어떤 일을 하며 내가 했던 말이 대표는 꽤 거슬렸는지, 그 말을 계속해서 내게 말했다. "써퍼님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런 반응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런 직원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요."라고. 그래서 나는 포기했다. 


사실 나도 대표가 한 말들이 꽤나 마음에 남았는데, "써퍼님이 완벽하게 해왔으면 여유로웠겠죠."라던가 급여를 내 경력에 맞게 인정해주지 않는 다던가.. 그즈음 되었을 때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내게 지금 필요한 상사가 대표가 아니고, 대표에게 필요한 직원이 내가 아님을. 


사실 fit이 맞다, 결이 맞다, 하는 말들은 느낌 같은 말이라서 뭐라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이 회사의 경험으로 내게 fit이 맞다는 것은 같은 말을 서로 같게 이해하고, 같은 부분에 포인트를 두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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