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무언가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나른함

by 태림


애써 외면하면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만 속이 쓰리다. 아무래도 나도 물갈이를 하는 것 같다. 머리가 몸을 지배한다는 걸 어느 정도는 체감하며 살아왔기에, 계속해서 몸은 놓고 머리를 지배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너 안 아파’, ‘아니? 너 괜찮아’하면서. 이제서야 엄마가 컨디션을 회복했는데, 여기서 내가 퍼지면 안 된다. 여기서까지 책임감으로 스스로를 다그치는 내가 참 가엾기도 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그게 나인걸. 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수밖에.



원피스를 입고 다니다 불편하기도 하고, 덥기도 해서 숙소에 잠깐 온 김에 편하게 갈아입었다. 옷이 가벼워지니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다.


옷만 갈아입어도 이렇게 마음이 바뀌는데, 애써 껴안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내던져버릴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가벼워질 수 있을까. 나는 그 가벼움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일까.



치앙마이는 해를 기다리면서도, 해가 지기를 기다리게 되는 곳인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이다지도 양면적이라는 걸 이렇게 다시 깨닫게 된다. 가만 보면 깨달은 것을 까먹고, 또 깨닫고, 또 까먹고, 깨닫고,,, 그 과정들을 반복하려고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치앙마이에 다녀온 지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깨달은 것보다 까먹은 게 더 많은 것 같다. 다시 또 깨닫고 싶어 져 치앙마이가 더 그리워진다. 이 그리움이 또 여행의 묘미겠지만.



길게만 느껴졌던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9일 정도의 여행이면 아쉬움이 덜할까 싶었는데, 여전히 아쉬운 건 별 수 없나 보다. 아쉬움을 감추듯 일부러 더 씩씩하게 걸어본다.


토요마켓도 크다고 느껴졌는데 일요마켓이 더 크다는 후기들을 보고 기대도 더 커졌다. 치앙마이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릇들이 참 많다. 파란빛의 염색이 들어간 옷들도 그렇고.


이미 물건들을 꽤 산 것 같은데도 더 사고 싶은 게 남았다는 게 놀랍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아무래도 쇼핑 때문인 것 같다. 일상에서는 뭘 이렇게까진 못 사니까 재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하하.




숙소부터 걸어서 올드타운 중앙으로 들어오는데, 시장의 입구인지 끝인지 모르겠지만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의자들이 쫙 깔려있고, 박스에 "massage, 300 “ 이런 문구들이 많이 적혀있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마사지를 받는 사람이 적었는데,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역시 다들 치앙마이에서 보내는 하루의 마무리는 마사지인가 보다.



토요마켓보다 확실히 일요마켓이 더 크고 사람도 많았다. 원래 오토바이랑 차들이 다니던 도로까지 다 막혀있었다. 치앙마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니, 신기했다.



사실 우린 사원에 큰 관심이 없어서 왓프라이싱도 그냥 지나가면서만 봤었는데, 근처 온 김에 한 번 봐보자 싶어서 들어가 봤다. 삐까뻔쩍한데도 고요한 느낌이었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느끼는 찰나의 잔잔함이 참 좋았다.



아마도 제대로 된 마지막 저녁일 것 같아서 그동안 맛봤던 집 중 가장 맛있었던 비건 식당에 다시 왔다. 치앙마이에서 먹은 것 중 뭐가 제일 맛있었냐고 묻는다면 고민하지 않고 그린커리라고 말하고 싶다. 똠양꿍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오히려 치앙마이에서는 그린커리가 훨씬 맛있었다.



귀여운 아이가 그린 코끼리 엽서를 봤다. 어떤 손님이 엽서를 구매하고 간식을 먹고 있는 아이를 향해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아이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손과 입에는 간식이 있었다. 그런 순수함이 문득 그리워졌다. 예의를 갖추느라, 사회가 기대하는 무엇에 순응하느라 나는 나를 너무 잃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고 다시 나를 찾아 드러낼 용기도 없으면서.



치앙마이에서는 딱히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소소한 일상을 보내기에 참 좋은 곳인 것 같다. 꼭 뭔가 되지 않아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나른함. 불안을 연료로 살아가는 내게 더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삶이 내 의지보다는 어떤 흐름을, 필연을 따라가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돌아가면 너무 아득 바득 살진 말아야지 하고 다짐도 해보고.


아예 불안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잘 조절하며 함께 살아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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