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먹어봐야 아는 사람.

by 태림


가는 날까지 날씨가 눈부시다. 내내 햇볕을 많이 받았으니, 나도 엄마도 조금은 자랐길 바라게 된다. 식물처럼 눈에 보이는 성장은 아니겠지만 스스로의 마음을 조금은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한 9일이었다.



마지막날은 아쉬움 가득 담아 다시 님만해민으로 향한다. 올드타운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으니, 가기 전 마트도 들리고 사고 싶었던 티셔츠도 사 보기로 마음먹었다.



엄마와 단둘이 이렇게 길게 여행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길어야 4박 5일 정도였는데, 이렇게 온전히 둘이서만 9일을 보내보니, 또 새로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엄마의 코 고는 패턴과, 아침에 배고프다며 눈 뜨는 시간, 자는 나를 깨우기는 그렇고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스럭거리는 소리들 같은 것.


한 5일쯤 됐을 땐 이제 집에 가고 싶더니, 9일쯤 되니 마냥 아쉽기만 하다. 외부의 어떤 눈치도 없이 엄마랑 온전히 보내는 시간이 꽤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엄마도 그랬어야 할 텐데.



한국에선 싸다고 생각했을 걸, 타지에 오면 타지의 물가에 금방 적응하게 되는 것 같다. 고모를 따라 첫 패키지여행으로 일본 갔을 때 뼈저리게 느끼게 된 학습이다. 당시 환율의 개념이 없었던 나는 크루즈의 편의점에서 500엔을 내고 메로나를 사 먹었다. 그 안에선 500엔이 500원이 되는 마법의 공간이었다.(지금 생각해 봐도 말도 안 되게 어리숙했다.)


나는 늘 경험으로 배운다. 누군가의 이렇다더라, 그렇더라, 하는 말은 잘 통하지 않는다. 굳이 직접 다쳐보고 상처 입으며 체득한다. 그런 나를 엄마는 늘 답답해했다. 꼭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냐며.


그때도 지금도 엄마에게 답할 수 있는 건 그게 나인걸 어떡하냐는 말 뿐이다. 나도 이런 내가 아쉽다. 그래서 나는 나를 애틋해하는 것 같다. 마냥 좋아해 줄 수 없어서 찾은 단어가 애틋함이다.



그럼에도 이런 나를 잘 아는 건 엄마일지도 모르겠다. 또 갖고 싶은 무언가를 들었다 놨다 하며 고민하는 내게 그저 “사렴” 한 마디를 건네주니까.


나도 엄마가 무언가를 들었다 놨다 할 때 쿨하게 “사~” 하며 사줄 수 있는 딸이 되고 싶다. 얼른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마음처럼 쉽지 않아 또 금세 불안해진다.



치앙마이에 다녀온 지 1년쯤 지나 이런 고백(?)의 글들을 쓰게 된 이유가 그 불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때 치앙마이의 햇볕에 바짝 말려온 마음을 되찾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내 안의 어딘가에 남겨져있는 젖었다 마른 그 자국을 보며, 조금은 나를 좋아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알차게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는 별생각 없다던 엄마가 치앙마이에서 마지막날까지 마사지를 먼저 찾게 되었다. 엄마에게 그런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어 즐거웠다.


나와의 여행들로 엄마가 조금은 용감해지고, 이야깃거리들이 많아지고, 나를 견뎌내 주는 만큼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이 들수록 자신을 더 좋아하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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