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기서 자기가 안 쓰는 건 바닥에 꺼내놓고 서랍 정리 좀 해줘요”
남편에게 소지품이 가득 담긴 서랍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남편은 서랍에 있던 물건을 모두 꺼내어 잘 접거나 차곡차곡 개어서
다시 그대로 집어넣고 있었다.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더니 이런 걸 말하는 건가?
그 안에는 지난 10년간 한 번도 꺼내보지 않은 물건이 대부분이었고
그것들은 추억의 물건도, 그렇다고 딱히 필요한 물건도 아니라는 점이다.
왜 남겨두느냐고 물으면 “쓸지 몰라서”라고 대답한다.
확신하는데 10년 동안 안 꺼내본 물건이라면 앞으로도 쓸 일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데도 남편에게 정리를 부탁한 것은 직접 안 쓰는 물건을 비우고
꼭 필요한 것만 여유롭게 수납하면서 무신경해진 쇼핑 습관을 고쳐주길 바라서였다.
하지만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남편은 내가 말한 <정리>의 의미를
비움(empty)이 아닌 정돈(arrange)으로만 생각한 모양이었다.
과연 무엇 때문에 쓰지 않는 물건인 것이 분명한데도 미련이 남아서 버리지 못하는지,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대비하느라 쓰지도 않을 물건에 귀한 공간을 내줘야 하는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처음에는 모든 걸 내 기준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다른 사람의 물건도
오래되고 안 쓰면 무조건 버리라고 오지랖 넓게도 잔소리를 하곤 했다.
정리정돈 안내서를 읽고 신박한 정리법에 대해 열심히 얘기해 보아도 그들은 동요가 없었고
그다지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이 보였다.
내 목만 아프게 설명을 늘어놓았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 필요한 거니까~”
“이렇게 늘어놔야 편안해요 “
“아까운걸 왜 버려?”
조심스럽게 설득을 해봤자 가벼운 웃음으로 때우거나
“너나 버리고 살라”며 사생활 간섭 말라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정리와 비움은 어디까지나 타의에 의해서가 아닌 본인의 마음이 움직여야
시작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고 이것이 정리에 관해서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물건을 사들이며 행복해하던 사람이었다.
많은 물건들을 테트리스 끼워 맞추듯이 정리하는 것을 “정리의 달인”이라며
자랑스럽게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불필요하고 과하게 많은 물건들을 비우고 정리를 시작하면서
여백에서 오는 풍요로움을 느끼게 되었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변화도 맛보았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삶의 충만함이란 집안을 물건으로 가득 채운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숨 쉬는 빈 공간이 나에게 주는 여유로움은 쇼핑의 즐거움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다.
누구든 자신에게도 때가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물건 쌓아둘 데가 없을 정도의 포화상태를 느끼고 집평수를 넓혀야 하나 고민 중이라면,
-옷으로 가득 찬 옷장 앞에서 오늘도 입고 나갈 게 없다며 외출 준비가 길어진다면,
-사고 싶은 물건을 원 없이 질러보아도 쇼핑에 대한 갈증이 더해간다면,
그리고
-현재의 생활이 정체돼 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면
정리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라는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깨어남을 하루라도 빨리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정리정돈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진심으로 물개 박수를 쳐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