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시장을 열다

주 방 (2)

by 아이스블루



주방도구를 선별해 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놔두면 정말 잘 쓸 것 같고 막상 없앤다고 생각하니까 예뻐서 아깝고,

인터넷 최저가를 찾느라 손품 판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가 참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 돈 낭비를 많이 했구나..”


끊임없는 자아성찰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늦은 후회와 반성만 하고 있기보다 먼저 이것들을 처리해야 한다.

큰 결심하고 싱크대에서 꺼낸 이상 다시 들여놓을 수는 없었다.


그릇을 사 모을 때만 해도 직장을 다니지 않고 전업주부로 살림만 했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애들 간식을 직접 만들겠다며

홈베이킹을 비롯하여 새로운 레시피를 찾아서 해내는 요리도 꽤 있었다.

내 요리의 스펙트럼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지만 나름 여러 가지 요리를

시도해 보던 때였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도구병(?)이 생겨서 필요할 것 같은 주방용품들을 하나하나

사 모으기 시작했고 이렇게 꽉 찬 주방이 되고 말았다.


우선 벽장에 있는 그릇, 냄비 할 것 없이 모두 꺼내서 바닥에 늘어놓았다.

주방 살림의 특성상 워낙 종류도 다양하고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다 보니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질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거실바닥이 그릇과 냄비들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여기는 혹시 남대문 그릇 시장일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출처 unsplash




작업이 길어질 것 같아 커피 한 잔 마시고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릇이 모두 바닥에 나와 있었으므로 한데 뒤섞인 것들 사이에서

머그컵을 골라야만 했다.

가만.... 이번엔 안 쓰던 커피잔에 마셔볼까?

처분해 버린다면 써볼 기회도 없으니 제대로 분위기 한번 잡아봐야겠다.


푸른빛이 감도는 이 하얀색 티포트는 차를 우려낼 수 있고

드립 커피도 내려마실 수 있는 독특한 1인용 티포트인데,

지인에게 선물할 용도로 샀다가 불발되어 몇 년간 구석자리 신세를 지고 있었다.

이렇게 다시 보니 참 예쁜 거 잘 샀네~

선물용이었으니 오죽 신경 써서 골랐을까 싶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위한 물건이 아니므로 괜히 사용감 남기지 말고

그냥 팔아버리기로 마음을 바꿨다.

커피는 언제나처럼 애용하던 익숙한 잔에 마시고~

역시 손에 익은 내 머그컵이 최고다!!


정면샷, 측면 샷, 해체 샷에서 풀 장착 샷까지.

꼼꼼히 사진을 찍고 온라인 사이트에 이 녀석 프로필을 적다가 문득,

‘한 번도 안 쓴 거지만 사실이라고 믿을까? 누가 그릇을 중고로 살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마찬가지로 ‘이걸 또 누가 보겠나’ 싶어서 인터넷 중고 장터에 그냥 올려버렸다.

책 판매는 경험이 있었으나 그릇을 중고로 내놓는 것은 처음이라서

내가 물건을 팔 수나 있을지 자신이 없던 새싹 판매자였다.

시도는 좋았다며 괜히 얼굴만 벌게져서 원래의 구석자리로 티포트를 되돌려 놓고 말았다.




출처 unsplash




몇 시간이 지났을까?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다.

티포트를 사고 싶다는 문자였다! 정말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그런데 직거래를 하자고 했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인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서 거래를 한다고?

아... 겁난다….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고 바꿔야 한다면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 대신해 줄 수도 없고 알려준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어차피 내가 해야 되는 일.

눈 딱! 감고 한번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렵게 꺼낸 한마디, 힘겹게 내디딘 첫걸음이

인생을 바꾸는 시작이 된다면 말이다.


문자에 답장을 해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