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방 (완결)
그릇을 깨지지 않도록 포장할 두루마리 뽁뽁이,
마트에서 얻어온 여러 사이즈의 박스들...
저녁때가 다 되었지만 주방 바닥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어수선한 모습이다.
“나 참~ 괜찮다고! 통화해 보니까 젠틀하던데 모~”
요즘은 물건을 직접 확인하고 사기 위해 직거래를 많이 한다고 했다.
남편은 그렇게 겁이 나면 같이 나가준다고 했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꼼꼼히 포장한 티포트를 꼬~옥 안고 집 앞 마트로 향했다.
구매자의 집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해서 우리 집 근처로 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승용차에서 젊은 남자가 내렸고
티포트를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물건값을 지불하고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슝~~ 가버렸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할까 봐, 나쁜 사람일까 봐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막상 거래가 끝나고 나니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엄청 큰일을 해낸 것 같아 날아갈 듯 기뻤다.
“자기야~ 나 2만 원 벌었다. 히히”
당시 구입가의 반도 안 되는 돈을 받고서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앞으로는 정말 작은 컵 하나라도 허투루 사면 안 되겠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첫 거래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난 더욱 속도를 내서 물건 정리를 했다.
큰 냄비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너무 작은 사이즈여서 쓸모가 적었던 무쇠냄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빵을 위한 제빵도구와 오븐 용기, "냉장고 파먹기"를 하면서
정리를 한 덕에 덜어낸 냉장고용 밀폐용기들과 산처럼 쌓인 자잘한 수납상자들...
충분히 상품가치가 있는 훌륭한 물건들은 구매자를 찾아 판매했고,
제빵이 취미인 동네 친구에게 나눔을 했으며, 기부한 물품도 여러 개 되었다.
좀 더 부지런을 못 떨었기에, 그릇을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그릇들이
아직은 많이 남아있지만 크기별, 종류별로 사 모을 때처럼 그릇에 연연하지 않았고
한 가지 냄비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드는 일도 많아졌다.
다용도 웍이란 다용도로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니까 볶음도 하고 찜도 하고
국도 끓여 먹는다.
그래도 주방 벽장 안에는 정예요원들이 항상 대기 중이니 어떤 요리 상황이 닥쳐도
즉각 대응이 가능하다.
감자칼도 디자인별로 있는 게 아니라 이제 딱 한 개라서 감자가 등장하면
떠오르는 녀석이 이거 하나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는데 왜 바꾸지 못했을까?
내 주방엔 한두 번 썼다고 벗겨지는 허접한 냄비가 아니라
내구성이 좋은 제대로 된 냄비가 있으니 아끼지 않고 마구 써주기로 했다.
요리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은 요리할 때 쓰는 것이지
내가 모셔야 할 상전이 아니니까 말이다.
명품 도구를 잘 쓰는 길은
아끼고 모셔놓는 것이 아니라
많이 써주면 된다
그것이 좋은 물건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