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 그릇이란 없다

주 방 (완결)

by 아이스블루



그릇을 깨지지 않도록 포장할 두루마리 뽁뽁이,

마트에서 얻어온 여러 사이즈의 박스들...

저녁때가 다 되었지만 주방 바닥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어수선한 모습이다.


“나 참~ 괜찮다고! 통화해 보니까 젠틀하던데 모~”

요즘은 물건을 직접 확인하고 사기 위해 직거래를 많이 한다고 했다.

남편은 그렇게 겁이 나면 같이 나가준다고 했지만


‘ 이것도 경험이지~ 쓰지도 않을 물건 사모은 내 잘못이다 ’


마음을 단단히 먹고 꼼꼼히 포장한 티포트를 꼬~옥 안고 집 앞 마트로 향했다.

구매자의 집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해서 우리 집 근처로 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승용차에서 젊은 남자가 내렸고

티포트를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물건값을 지불하고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슝~~ 가버렸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할까 봐, 나쁜 사람일까 봐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막상 거래가 끝나고 나니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엄청 큰일을 해낸 것 같아 날아갈 듯 기뻤다.

“자기야~ 나 2만 원 벌었다. 히히”

당시 구입가의 반도 안 되는 돈을 받고서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앞으로는 정말 작은 컵 하나라도 허투루 사면 안 되겠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출처 unsplash




첫 거래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난 더욱 속도를 내서 물건 정리를 했다.

큰 냄비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너무 작은 사이즈여서 쓸모가 적었던 무쇠냄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빵을 위한 제빵도구와 오븐 용기, "냉장고 파먹기"를 하면서

정리를 한 덕에 덜어낸 냉장고용 밀폐용기들과 산처럼 쌓인 자잘한 수납상자들...

충분히 상품가치가 있는 훌륭한 물건들은 구매자를 찾아 판매했고,

제빵이 취미인 동네 친구에게 나눔을 했으며, 기부한 물품도 여러 개 되었다.


좀 더 부지런을 못 떨었기에, 그릇을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그릇들이

아직은 많이 남아있지만 크기별, 종류별로 사 모을 때처럼 그릇에 연연하지 않았고

한 가지 냄비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드는 일도 많아졌다.

다용도 웍이란 다용도로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니까 볶음도 하고 찜도 하고

국도 끓여 먹는다.


더 이상 우리 집 주방에 "전용 냄비"라는 것은 없다.


그래도 주방 벽장 안에는 정예요원들이 항상 대기 중이니 어떤 요리 상황이 닥쳐도

즉각 대응이 가능하다.

감자칼도 디자인별로 있는 게 아니라 이제 딱 한 개라서 감자가 등장하면

떠오르는 녀석이 이거 하나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는데 왜 바꾸지 못했을까?


내 주방엔 한두 번 썼다고 벗겨지는 허접한 냄비가 아니라

내구성이 좋은 제대로 된 냄비가 있으니 아끼지 않고 마구 써주기로 했다.

요리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은 요리할 때 쓰는 것이지

내가 모셔야 할 상전이 아니니까 말이다.



명품 도구를 잘 쓰는 길은
아끼고 모셔놓는 것이 아니라
많이 써주면 된다
그것이 좋은 물건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다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