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종이가게에서 구매한 만년필은 파리를 꽤 닮아있어서
한 달 전 파리에 있는 작은 종이가게를 방문했습니다. 가게를 통째로 가지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물건들이 가득한 그곳은 구글맵에는 종이가게로 표시되어 있지만 만년필과 만년필 촉, 각종잉크, 탐나는 각종 종이들과 지우개, 엽서, 그리고 한국의 60년대 우표까지도 파는 곳이었습니다. 작은 물건을 아주 좋아하는 저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죠. 나의 초록색 만년필과 초록색 잉크, 그리고 같이 갔던 친구에게 꼭 주고 싶었던 빨간 만년필, 각종 엽서까지를 사들고 나왔습니다. 참고 또 참고 고르고 또 고른 물건입니다. 계산할 때에는 엽서 두 종류를 따로 담아줄 수 있는 지를 물어봤고 백발에 아주 멋진 안경을 쓴 직원분은 선물용인지를 질문했습니다. 둘 다 저를 위한 거예요, 하고 슬며시 웃었고 직원분은 그런 저에게 그러엄 나를 위한 것 아주 중요하지, 하면서 편안한 미소를 보여주더라고요. 아주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이 글의 초안은 그 종이가게에서 산 만년필로 쓰였습니다. 초록색 만년필과 초록색 잉크로요. 만년필은 써 보았어도 잉크를 카트리지에 충전하는 방식이었지 잉크를 찍어 쓴 적은 없어서 꽤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불편함을 동시에 소중함이라고 부릅니다. 머릿속에 할 말이 붕붕 떠 다닐 때에는 손에 익은 볼펜으로도 그 머릿속의 말들을 다 따라잡을 길이 없습니다. 안 그래도 생각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느릿한 손으로 이렇게 적정량 잉크를 찍어 종이에 쓸 때면 쓰고 싶었던 말을 다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말만이 종이에 남게 됩니다.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펜촉과 잉크와 종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은 노트북으로 대체되어 당연함보다는 불편함이 된 일이 벌써 오래전입니다. 결국은 종이에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자꾸 다시 찍을 필요가 없는 볼펜을 쓰게 되겠지만, 이러한 순간이 있어도 좋을 듯싶습니다.
만년필의 불편함, 동시에 소중함은 종이가게가 위치한 파리와 꼭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오래 종이신문이 남아있는 곳이 프랑스인 이유도, 비슷한 규모의 다른 도시에 비해 대규모의 도서관이 많은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파리에는 국립도서관, 시립도서관, 역사도서관 등 대학 도서관을 제외하고도 좋은 도서관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인터넷 자료를 찾는 대신 오래된 책을 직접 찾아 가져온 노트에 옮기거나,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신문을 읽거나, 오래된 건물을 깨끗하고 편리한 건물을 짓기 위해 허물지 않는 일을 파리에서는 자주 일어납니다. 파리의 몇몇 지역에서 매주 열리는 벼룩시장을 걷다 보면 '굳이' 오래된 초판본 도서나 '굳이' 지금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가치 있고 무용한 물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불편함, 동시에 소중함'은 아주 사람들이 파리를 좋아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