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한민국 교사입니다."
2006년 3월 서울시교육청 국어교사로 발령받은 후 17년이 지났다. 나의 첫 담임반 수학여행지는 2008년 금강산이었고(우리는 금강산 마지막 수학여행단이었고, 우리를 끝으로 지금까지도 여행은 재개되지 못했다.) 오늘 그때 우리반 아이가 결혼을 할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법정구속된 우리반 아이를 보러 스승의 날 구치소에 갔던 기억도, 교실에서 자해를 하는 아이에게서 칼을 빼앗으며 아이를 진정시켰던 기억도, 체육대회 축구 경기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따낸 후 마치 박지성이 히딩크 품에 안겼던 것처럼 내게 달려왔던 아이의 모습도 또렷하게 지나간다. 17년간 아이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교사가 되기 전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기쁜 순간도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난 내가 교사라는 사실이 진부하지만 참 좋고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내 업이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나 하나의 힘만으로는 미약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많은 제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세상을 더 좋게 바꿔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지나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내 믿음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감사하다.
그런데 이런 나의 내면과는 별개로 2023년 10월 오늘 내가 만약 서울 어느 길거리에서 "저는 대한민국 교사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내가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눈빛을 마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의 매일같이 올라오는 교직 관련 기사를 보면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서도 끝 모르게 추락하고 있는 롤러코스터에 함께 타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고 우울한 게 현실이다. 동료 선생님들과 이야기해봐도 결국은 한숨으로 끝나는 상황들. 어깨가 뭉치고 숨이 턱 막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제도적 보장부터 사회적 인식 개선, 교직문화를 바꾸기 위한 교사들 스스로의 노력까지... 아마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방면에서의 세심하고 다양한 접근이 필요할 거다.
그래도 다시 숨을 고르고 천천히 내뱉어본다.
"저는 대한민국 교사입니다."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 안타까움과 절망의 대명사일지도 모르지만, 저 인사는 적어도 내게는 꿈이었고 삶이었고 사랑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법과 같은 저 주문 덕분에 2014년 싱가포르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각국으로의 교육문화탐방을 이어가며 성장하고 배우고 그것들을 학생들과 나눌 수 있었다.
이 책은 평범한 어느 대한민국 교사의 교육문화탐방을 통한 성장기이다. 사실 작금의 상황에서 감히 내가 이렇게 교육의 희망을 논해도 될까? 걱정과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의 교직 역시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기에 지금은 절망의 세상에 이야기 하나를 보태야 할 때가 아닐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어미 닭이 밖에서 쪼는 것만큼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게 중요한 것처럼, 절망의 상황에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작은 바로 우리 교사여야 한다는 나름의 해답을 찾았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세상에 보내려 한다.
비록 글솜씨는 부족하나 나의 경험과 배움은 너무나 귀하기에 이 책이 꼭 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한민국 교육의 희망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의 제목에 1을 붙인 것도 이 책을 시작으로 더 많은 후속편이 세상과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교육문화탐방기에 숫자가 더해질수록 나의, 우리의, 대한민국의 나아가 세계의 교육이 교류하고 소통하며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으리라 오늘도 크게 꿈을 꿔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를 그리고 우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힘주어 말해본다.
"저는 대한민국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