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물리학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최근까지도 낯선 아이디어였다. 과학자이든 아니든 생물물리학은 새로운 단어였다. 심지어 물리학계 내에서도 학문으로 인정받는데 시간이 걸렸다. 한국물리학회에서 생물물리학이 물리학의 분과 학문으로 인정받은 게 2019년이었다.
생물물리학은 물리학과 생물학의 경계에 있는 학문이다. 따라서 생물물리학자는 물리, 생물, 화학을 동시에 알아야 하고, 세 분야 연구자와 대화하고 협업할 일이 자주 있다. 과학계에는 물리학이 싫어서 생명과학을 연구한다는 사람과, 반대로 생명과학이 싫어서 물리학은 선택했다는 사람을 종종 만날 수 있다. 현대 과학에서 최신 지식을 생산하고 있는 물리학과 생물학은 이렇게 간격이 크다.
특히 인간의 생각과 심리에 관한 오래된 질문을 과학으로 밝히는 뇌과학과 심리학은 물리학과 생물학의 융합이 특징이다.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유용한 자기공명영상(MRI)은 물리학자들이 만든 핵자기공명(NMR)의 다른 이름이다. 뇌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뇌와 마음을 들여다 보는데 이 장비를 활용한다.
물리학자와 생물학자의 대화는 종종 불편한 공기를 배출한다. 물리학자는 생물물리학 연구가 생물학이라고 말하고, 생물학자는 생물물리학자에게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양쪽에 낄 때면 생물물리학자는 물리학자와 측정 도구와 숫자로 말하고, 생물학자와는 개체 특이성과 통계로 소통한다. 다른 자연과학과 달리 물리학이 두드러지게 기여하는 영역인 측정 장비 개발을 공통 영역에 두면, 생물물리학자는 물리학자와 같은 그룹에 속할 수 있다. 반면 생물학은 세포와 모델 생물을 포함해 생명체를 직접 다룬다는 게 고유한 학문의 특성이다. 생물물리학자는 생물학자와 생체 시료를 다루는 어려움을 공유할 때 동일한 연구 분야에 속한다고 여긴다. 생물물리학자는 두 학문의 경계에 있는 만큼 양쪽에서 보지 못하는 걸 볼 때도 있다.
에릭 베치그와 함께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슈테판 헬도 역시 무명 연구자로 떠돌던 시기가 있었다. 1990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현미경 개발은 그리 유망한 주제가 아니었다. 박사후연구원으로 몇 년 동안 옮겨 다녀야 했고, 과학에서는 변방에 가까웠던 핀란드에서도 3년을 보냈다. 2020년 11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주최한 <노벨상 수상자와의 대화>에 헬이 초청을 받았다. 여기서 헬은 자신의 연구가 “물리학에서 지엽적인 주제라고 느꼈고, 주목을 받을 거라 예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도 연구를 막 시작할 시기에는 자신의 연구 주제가 주류 물리학이 아니라고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독일의 대표적인 과학연구기관인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두 개의 연구그룹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