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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의 눈물

도르르 빗소리

하와이 살이 전에는 비가 내리면 비와 어울리는 음악들을 듣곤 했다. 하지만, 하와이 살이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음악을 듣기보단 그저 하염없이 비를 바라보고, 빗소리를 듣는 그 자체가 정말 소소하지만 재미난 힐링의 순간이었다. 하와이에서만 볼 수 있었던 독특하고 신기했던 광경들 중 하나는 다양한 비들이 겹겹이 쌓여, 공간별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단거리, 중거리, 원거리마다 각각 다른 형태의 비가 내리는데, 맑게 흐린 하늘과 적당한 바람이 불 때 잘 보인다. 단거리에는 이슬비가, 중거리에는 소낙비같이 죽죽 내리는 비가 바람 따라 이동하고, 원거리에는 안개 끼듯 아주 옅은 비가 내리면 된다. 중거리에서 내리는 소낙비는 가끔 거세게 부는 바람에 맞춰 춤추듯이 지나가기 때문에 나는 소낙비 커튼이라고 애칭을 지어줬었다.


다양한 비가 공존하는 하와이의 빗소리


무지개의 눈물 (Rainbow's teardrop), 캔버스에 아크릴, 91.4x91.4cm, 2019

나의 그림 '무지개의 눈물'은 이러한 재미난 하와이의 자연현상과 하와이 비를 바라볼 때의 나의 느낌을 한 곳에 담아보고자 했었다. 이것 또한 사진, 영상, 그리고 사실화 그림과 다른 또 다른 추상화의 묘미가 아닐까.


저 먼 곳엔 이미 비구름이 지나가면서 오렌지빛 석양과 함께 무지개가 뜨고 있고, 중간 지점은 보슬비가 내리고, 앞은 바람이 많이 불어 비들이 커튼 치듯이 옆으로 쭉쭉 나아가는 모습이 한 번에 연출되기도 한다. 소낙비 커튼이 쳐지는 비를 볼 때면, 무지개가 눈물 흘리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무지개에게 어떤 일이 있기에 저리 하염없이 우는 것일까. 과연 슬픔의 눈물일까, 아니면 기쁨의 눈물일까. 무지개의 눈물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도 연보랏빛으로 물든다. 내 마음까지 연보랏빛으로 물들고 나면, 하늘은 비가 다 그치고 아름다운 부드러운 진 홍시 빛 주황색의 석양과 함께 마무리된다. 그리고 어디선가 비를 머금은 잔디 향이 나를 감싼다. 마음까지 촉촉해지는 낭만이 가득한 무지개의 눈물이다. 보라색은 파란색과 빨간색을 섞었을 때 나오는 색이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한 색깔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게 참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팬톤 (Pantone)에서도 2022년 올해의 컬러로 오묘한 보라색인 베리 페리 (Very Peri)를 선정했다. 여기서 페리 (Peri)는 내 짐작컨대 페리 윙클 (Periwinkle)이라는 꽃에서 따온 것 같다. 이 꽃의 색깔은 파란색과 보라색 계열이어서 '라벤더 블루'라고도 불린다. '컬러의 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저)이란 책에 보면 이 페리 윙클 꽃 색깔을 보고 한 사람은 파란색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아니다라며 서로의 주장이 맞다고 토론하는 웃픈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이처럼 보라색은 평소에 선호하는 색에 따라서 파란 계열로 보일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다. 팬톤 (Pantone)은 시대가 변할 때마다 파란 계열을 '올해의 색 ¹'으로 지정하는 특징이 있다. '올해의 색' 발표는 1999년 12월부터 처음 시작되었는데, 2000년 밀레니엄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우울감을 파란 계열인 세룰리언 (Cerulean)이란 색으로 표현하였다. 그 연장선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막 시작되던 2019년에는 2020년의 올해의 컬러로 클래식 블루(Classic Blue)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파란 계열로 선택한 것은 그리 놀라운 선택은 아니다.  


베리 페리 (Very Peri)는 다른 파란 계열과는 다르게 '붉은색'도 포함하고 있다. 불안감 혹은 우울감에 열정 한 대접을 넣은 느낌이다. 종식되지 않은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열정은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팬톤 (Pantone)의 설명을 보면 베리 페리 (Very Peri)에 '창의성, 상상력, 역동성, 미래지향적, 용기'이란 키워드를 내포하고 있다. 키워드만 보더라도 파란색에 붉은색을 넣은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아직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것들이 불안정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순 없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베리 페리 (Very Peri)처럼 앞으로 다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2022년이 되길 바란다.


 나의 2022년도 이 무지개의 눈물처럼 시원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지개의 눈물'이 여러분 마음속에 이 글 읽기 전 후로 어떻게 다가오는지 궁금하다.



1. 올해의 색이 발표되는 연도와 실질적으로 가리키는 연도가 달라 헷갈릴 수도 있다. '올해의 색'은 매년 12월 초에 발표된다. 예를 들어 2000년의 올해의 컬러는 1999년 12월에 발표된다. 따라서 발표는 '작년'에 되었어도, 해당 색을 사용한 제품들이나 색깔 이벤트는 '올해'에 나오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또한, 팬톤의 올해의 컬러는 그 시대의 사회적 혹은 문화적 이슈를 담고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색깔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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