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웃비 속을 거닐고 있는 우리네

웃비: 아직 우기는 있으나 좍좍 내리다가 그친 비

웃비 (A Sudden Lift of a Downpour), 2020, 캔버스에 아크릴, 152.4 x 152.4 cm, 현 East West Center Gallery 소장

이 그림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의 모습을 여우비 설화 속 '구름'에 빗대어 표현해보고 싶었다. 복잡 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는 구름 속은 과학적으로 접근해보면 하얀 잿빛의 수증기이다. 이 수증기가 혹시 웃비와 닮아있진 않았나 싶었다. 사전적 정의가 아닌, 내가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 웃비란 장마철에 비와 비 사이의 시간과 공간, 즉 하늘은 여전히 수증기를 한가득 머금고 있는 회색빛이고, 언제라도 다시 장대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는 상태의 보슬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사료되기 때문이다. 현재가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Present is 'present.'), 나의 현재는 미스터리 한 안갯속을 걷는 나날들의 연속이다. 취업, 높은 집값 등 여러 사회적 이슈들로 인해 생기는 개인의 불안, 분노, 혹은 화를 현대적인 한국인의 '한'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². 하얀색 아래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색깔의 옅은 잿빛들을 통하여 개인에서 국가까지의 다양한 '한'이 어떻게 기쁨으로 승화되는지 그 과정을 은은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 그림의 주된 색깔은 보라색과 하얀색이다. 보라색은 파란색과 빨간색을 섞으면 만들 수 있는 색이다. 냉정과 열정, 혹은 시원함과 따뜻함과 같이 서로 상반되는 의미가 같이 공존하는 것 같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색깔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라색처럼 때론 180° 반대되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팬톤 (Pantone)에서 2022년 올해의 컬러에 선정된 베리 페리 (Very Peri)는 보라색 계열인 만큼, 더 자세한 보라색 이야기는 보라가 주 색깔로 사용된 그림인 '무지개의 눈물'에서 해보려 한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외국인들이 한국의 현대 사회, 문화, 그리고 역사의 더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이 '한'을 하얀색을 사용하여 시각화해보고 싶었다. 하얀색은 예로부터 조상들이 햇빛과 닮은 색이라 하여 좋아하던 색이기도 하고, 상복 혹은 살풀이 춤의 옷처럼 슬픔을 표현할 때도 입던 색이다. 다시 무(無)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아무 색깔이 가미되지 않은 삼베나 흰 무명이 전통 상복이었다. 아무런 염료가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삼베 색깔도 한국 전통에서는 하양의 범위에 들어간다. 고(故) 이건희 회장 장례식에서 삼성가는 우리나라 전통을 살려 하얀 상복을 입었다. 이때, 상복이 큰 이슈 중 하나였던 것을 보면 검은색 상복이 얼마나 깊숙이 우리 문화에 들어와 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서양식 복식과 일제의 잔재 중 하나인 검은 기모노 상복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하얀색 상복은 오늘날 우리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조만간 하얀 상복을 입는 전통 장례 문화가 되살아나길 바라본다. 이처럼 하얀색 안에는 한국의 역사적 배경의 슬픔과 기쁨이 다 담겨 있어 '한'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색 같았다.


여러분들의 고민과 '' 무엇인가. 필자는 ''이라기 보단 고민이  크다. '어떻게 작가로 살아남고, 어떤 작가로 성장하는가'인데,  어렵다. 잘하고 있는 건지, 길을 잃은  아닌지, 아니면 타고난 재능이라 '믿고, 확신'하여 여기까지 왔지만 알고 보면  유명한 저주받은 어설픈 재능인  아닌지. 그저  안갯길을 걷는  같다. 내가 좋아하는 고흐도, 그리고 많은 대가들도 이런 고민을 했을까? 어떻게 해답을 찾았길래, 다시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아 작업을   있었는지 직접 만날 수만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오늘도 무명의 신진은 끝을   없는  안갯길 같은 웃비 속을 하염없이 거닐고 있다.



1. 추가적으로 설명을 곁들인다면, '한'을 영어로 번역할 때 흔히 Bittersweetness라고 하는데, 이는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물론 나도 여태껏 bittersweet / bittersweetness로 번역하면 한을 잘 번역했다고 여겼지만, 실제로 보니 여러 나라들에서 '한'과 비슷한 감정이 있다. 외국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인데 어쩌면 그들은 bittersweetness를 못 느낀다고 하면 아주 큰 오만이자 오판인 것 같다. 그래서 영어로 번역하게 되면 Han이라고 한국어를 그대로 옮긴 로마자를 써주고 그 의미를 'the Korean interpretaion of a historically particular, innate bittersweet sorrow emotion'이라고 써주면 좋다. 글로벌 시대에 무조건 이건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보단 보충 설명을 곁들여주면 좋다.


2. [감정과 사회] 김왕배 저, 한울아카데미 (2019)


이전 06화  꽃 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