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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가 달리는 속도보다 느린 인터넷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

Aloha!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하나, 두울, 세엣, 넷!

하와이는 많은 것들의 진행 속도가 느려서 달팽이 미학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4분의 4박자로 한 박자, 두 박자, 아니 열 박자를 세어보아도, 참을 인(忍) 자도 마음속으로 백번도 넘게 차근차근 써 봐도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중에서 당연코 제일 속이 답답했던 것은 인터넷 속도였습니다.


한국 인터넷 속도는 전 세계에서 인정할 정도로 엄청나게 빠릅니다. 이 속도에 적응해 있던 저는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이메일을 확인할 때 노트북이 더위를 먹어 고장 난 건 아닌지 염려스러울 정도로 느렸습니다. 처음엔 ‘그럴 수 있지,’ 싶다가 답답해지고,  속에서 깊이 우러나오는 화를 느끼다가 체념을 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다 보니 어느 순간 노트북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제가 원하던 이메일 화면을 온전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차츰 하와이 인터넷 속도에 적응이 되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느린 인터넷 속도는 그대로이지만, 주위를 더 둘러보게 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인터넷 속도가 평소보다 더 느리거나 신호가 잘 안 잡힐 때면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켜두고 빨래를 하든 과제로 받은 논문들을 읽든 다른 할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 어느새 ‘오늘의 할 일’ 중 여러 개를 더 끝낼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인터넷이 뭐라고 이렇게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것일까요? 사실 생각해 보면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인터넷이 되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해야 할 일인데 '인터넷 속도 = 내가 눈을 깜빡이는 시간보다 더 빨라야 함'이란 공식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아가니 다시 인터넷이 없으면 안 되는 생활 패턴으로 돌아간 제 모습이 보입니다. 일주일에 하루쯤은 디지털 디톡스 데이로 정하고 생활해 봐야겠습니다.


Maha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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