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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간의 해프닝

하늘이 날 반기고~ 세상은 아름다워~

Aloha!


이번 한 주도 잘 보내셨나요? 바쁜 일상 중에 잠시나마 봄을 만끽할 수 있었던 향긋한 순간이 있었길 바랍니다.


필자의 여러 낙 중 하나는 매주 토요일 밤에 EBS 세계 명화를 보는 것입니다. 이번 주 세계 명화는 2004년에 개봉했던 히달고 (Hidalgo)였습니다. 실화 바탕의 영화라서 스토리도 기본적으로 탄탄하고 무엇보다 히달고로 출연한 말의 연기가 명품이었습니다. 눈빛으로 모든 연기를 소화하는 명배우의 연기를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히달고와 프랭크 홉킨스가 사막에서 생과 사의 기로의 중간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문득 하와이에서 있었던 잠시간의 소동이 생각나 글을 씁니다.


2018년 1월 13일 토요일 오전 8시 7분.


별안간 휴대폰에서 귀가 찢어질듯한 소리로 울며 긴급재난문자 (Emergency Alert Systems)가 왔다고 다급하게 저를 깨웁니다. 토요일 아침은 주중에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아주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핸드폰이 온 힘을 다해 울며 나를 깨우는 소리가 너무 싫었습니다. '아 진짜,,, 이거는 또 무슨 상황이야?' 하며 졸린 눈으로 바라보다 잠이 확 깼습니다. 북한에서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긴급재난 문자였고, 이 문자의 끝맺음은 'This is not a drill.'이었습니다. '아니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거야? 제대로 읽은 게 맞긴 맞아?'


실제 상황이라고 알려주는 이 단순한 문장이 주는 무게감은 생각보다 엄.청.났.습.니.다.


입학한 첫 학기부터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아주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하와이가 사정권 안에 들어갔기도 하고 진주만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지요. 학과에서도 종종 미사일과 관련된 주제들을 토론하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핵 미사일 대피 안내 책자를 나눠주었습니다. 또한 실제로 미사일이 발사됐을 경우 학생들에게 연락하기 위한 비상연락망 훈련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와이의 카더라 소식지에 따르면 하와이의 건물들은 하와이 건강하고 싱싱한 바람이 잘 들어올 수 있는 친 환경적인 구조의 건물들이 많아 잘 대피했다 하더라도 공기 중의 핵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고도 하고, 미사일이 떨어지면 미국 본토에서 오는 보급선이 최소 2주 동안은 들어올 수가 없어 결국엔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무시무시한 말들만 돌아다녔습니다. 하와이의 풍문이기에 위의 말들이 참인지는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첫 학기에 하와이의 생활과 새로운 학과 분위기에 적응하랴 틈만 나면 미사일 이야기, 미사일 대피 훈련, 무시무시한 풍문들이 일상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정신적인 피로감이 점점 쌓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2018년 1월 13일의 아침으로 돌아가 봅니다.


그동안 계속 들은 말로는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이 20분 밖에 시간이 없다는데 마음이 다급해져 왔습니다. '어떡하지?' 싶다가 '이대로 죽는 건가?' 싶다가 '아 이렇게 죽기엔 아직 난 너무 젋은데! 못해 본 것도 많은데!'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물며 패닉이 잠깐 왔었습니다. 이 문자가 참인지를 먼저 확인해 보고 싶어 졌습니다. 한국 인터넷 뉴스들도 조용하고, 중요한 뉴스들은 실시간으로 속보가 뜨는 미국의 주요 언론사들의 인터넷 뉴스들도 검색해 보았지만 조용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실제 상황이라면서 왜 휴대폰만 울어대고 대피 경보 사이렌은 울지 않는 건지, 학교에서 얼마 전에 훈련했던 학교발 재난문자와 대피안내 이메일은 감감무소식인 건지.


휴대폰만 악을 쓰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세상은 너무 천하태평이었습니다. 얼마 후 단순한(?) 실수라는 정정 문자를 받자마자 얼마나 기운이 빠지던지요. 단지 문자를 받은 저만 공포에 질려가기 시작해서 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 보려 머리와 마음 모두 다 공포에 질려갈 뿐이었습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기도 하다가 정신 차리고 우선 한국 인터넷 뉴스들이 소식이 더 빠르겠다 싶어 인터넷 뉴스들을 읽어봤지만 조용했다. 한국은 지금 새벽이라서 그런가, 싶어 미국 인터넷 뉴스들로 가봤지만 역시 너무 천하태평이었다. 실제 상황이라면서 왜 사이렌도 안 울리고, 학교 재난 이메일은 왜 안 오는지, 세상은 너무 고요했다. 단지 사람들만 공포에 질려 있었을 뿐이었다. 다행히 한 공무원의 단순한(?) 실수라고 밝혀졌다.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보니 정말 기운이 쑥 빠지던지요.


잠시간 동안 생과 사의 기로에 서 있을 때의 공포감과 건강하게 삶을 영위하는 방법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망각하는 본능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이 해프닝 이후로 한동안은 매일매일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가뿐하게 일상을 살아갔었는데, 어느덧 매일 찾아오는 아침이 당연하고 익숙해졌습니다. 익숙해지다 보니 또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하는데만 급급하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라도 다시 '현재'의 소중함을 느끼며 저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귀하게 써보려 합니다.


여러분들도 활기차고 소중한 한 주 보내시기 바라요.


Mahalo!


P.S: 와이키키의 잔잔한 아침 바닷소리로 힐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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