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라는 이름

그리고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by 한 사람의 깊이

“바다는 우리네 삶터이자 놀이터야.”


그녀는 바다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 뒤엔 수십 년 동안 바다와 함께한 세월이 있었다.


해녀의 하루는 새벽이 아니라 물때로 시작된다.
달의 주기에 따라 바다가 부르면,
그녀는 언제든 테왁과 망태기를 들고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날도 나는 일을 나서기 전, 그녀의 집을 찾았다.
안방에서 고무옷을 껴입으며 그녀가 말했다

.
“이게 말이지, 입고 벗는 게 너무 힘들어, 어떨 땐 숨이 막혀.”


그러면서도 웃었다.


“그래도 이 옷 덕분에 밥 벌어먹고 살았어.

이 집고 사고 아이들 공부도 시켰지."

두꺼운 고무옷은 해녀들의 갑옷이지만 동시에 굴레다.
무겁고 답답해도, 그 옷 없이는 바다에 들어갈 수 없다.
피부질환과 관절 통증을 달고 산다는 그녀는


“육지서는 이래도 바다에 들어가면 몸이 다시 살아나."


“예전엔 해녀가 참 많았어.
우리 어촌계에서 제일 힘 좋고, 물질 잘하던 언니가 있었지.”

그녀는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그 언니가 없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일 못했을 거야.
해녀들 일 다 챙기고, 어촌계 일도 도맡았지.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주고 싶었는데…
해녀 사업 추진한다더니 흐지부지 돼버렸어.”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엔 깊은 존경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그녀가 말한 ‘언니’는, 이 마을 해녀들의 대장이자
바다의 질서를 지켜온 사람,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해녀들이 없었으면 이 마을도 없었지.
그런데 지금은.......”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먼바다를 쳐다봤다.


“우리 일, 고생만큼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어촌계에서도, 세상에서도 말이야.”


작업배가 어느 바위 근처에 도착하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들어가 봐야지. 오늘 물이 좋거든.”

그 말에는 여전히 바다를 향한 설렘이 묻어 있었다.


AI가 세상을 바꾸고, 사라질 직업이 늘어나는 시대.
하지만 정작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직업’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의 품격 아닐까.


누군가는 바다에서, 누군가는 공장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거리에서
자신의 하루를 묵묵히 살아낸다.
그들의 땀과 손끝이 모여 세상이 굴러간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말로만 외치지 말고,
그 일을 통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존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사회가 언젠가,
직업이 아닌 ‘사람의 가치’를 먼저 기억하는 곳이 되기를.


이전 12화미래를 바꾸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