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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이 Sep 29. 2024

펫로스 증후군 극복?

아니, 그냥 버티기.


반려동물을 무지개다리 너머로 떠나보낸 사람만이 아는, 그 상실감과 허무함은 결코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그런 마음을 누군가에게 내어 보이는 것조차 의미가 없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공감을 바라기엔 어차피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일이고, 건네는 위로의 말들은 종종 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상실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좌절감과, 원통함, 그리고 그리움이 사무칠 때마다 제가 찾아낸 작은 자기 위안의 방법들을 몇 가지 적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토토가 떠오를 때마다 미루지 않고 펜을 드는 것입니다. 그리움이 밀려오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곧바로 글로 쏟아냅니다. 때로는 엉망이 되기도 하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흔들리기도 하지만, 이 글들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기록입니다. 토토에게 전할 수 없는 편지이자, 내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둔 고백의 조각들인 셈이지요. 마치 비밀의 대나무숲에 혼잣말을 흘리듯, 나의 그리움과 후회를 그 안에 쏟아냅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글 속에서 내 감정들이 조금씩 가라앉고, 내 안의 혼란스러움도 천천히 정리되어 가는 것을 느낍니다.


두 번째 방법은 토토의 굿즈를 모으는 것입니다. 티셔츠, 피규어, 쿠션, 아트돌, 마우스패드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토토의 흔적을 모으며 마치 토토의 스토커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굿즈를 하나씩 만들어 갈 때마다, 토토와 다시 연결되는 따뜻한 감정이 밀려오곤 합니다. 굿즈에 담을 사진을 고를 때면, 힘든 기억 대신 토토가 생기 넘치고 빛나던 순간들만을 고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 순간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다시금 떠오르지요. 토토와의 이별은 내게 커다란 상실을 남겼지만, 그 시간을 제외하고 토토는 내 삶에서 가장 확실하고 가장 깊은 행복이었습니다. 15년 동안 축적된 그 수많은 행복을 돌아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은 마지막 3주간의 아픈 기억뿐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feat.모들리 (주문 제작을 통해 아트돌과 양모펠트로 반려동물의 모습을 재현해서 추억하는 방법이 있다. 왼쪽은 액자형, 오른쪽이 전신형)



세 번째 방법은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입니다. 이 약은 내가 너무 깊은 슬픔 속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나를 미리 보호해 줍니다. 모든 감정을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차기에 약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이 약에는 하나의 뚜렷한 단점이 있습니다. 마치 감정을 모두 잠재워버린 듯, 차가운 무감각이 찾아오는 겁니다. 마치 로봇처럼, 외부의 자극에도 반응 없이 흘러가 버리는 나날들이 이어지는 듯해요. 평소라면 조그마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였는데, 이제는 아무런 일도 나를 흔들지 않는 무덤덤함 속에 잠겨 있어야 했지요. 그 시간이 아쉽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감사하기도 합니다.


토토를 떠나보내고, 어느 순간 심장이 마치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어요. 그냥 '마음이 아프다'가 아니라, 정말로, 누군가 심장을 힘껏 쥐어 끌어올리는 듯한 고통이었죠.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은 이렇게도 선명한 신체적 고통으로 나타날 수 있더군요.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그 통증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네 번째 방법은 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것입니다. 토토가 많이 아팠을 때는 병원을 오가며 일에 집중할 겨를조차 없었지요. 이제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슬픔이라면, 차라리 일에 몰두하며 하루를 꽉 채우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일에 빠져들면 잠시나마 슬픔이 옅어지고, 그 순간만큼은 토토가 없는 세상에서 달아나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 나 자신을 억지로라도 바쁜 하루 속에 가둬두고 있어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과정이 즐거운 건 아닙니다. 성취감보다는 공허함이 앞서는 일들이기에, 때론 또 다른 좌절감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의욕이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이 슬픔을 버티기 위해 붙들고 있을 뿐이지요.


다섯 번째 방법은 같은 상실을 겪은 사람들과의 교류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사람들끼리 모인 오픈 채팅방에서 우리는 서로의 깊은 슬픔을 나누고, 누구보다 진심 어린 위로와 이해를 나눕니다. 그들은 내 아픔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고, 진심어린 위안을 건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반려동물이 건강하고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을 공유하며 그리운 순간들을 되새기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짙은 유대감을 나눕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나의 감정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서로를 다독이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때론 함께 웃고 울며 버텨낼 힘을 얻지요. 비록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는 이들이지만, 그 진심과 공감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을 거예요. 추천합니다. https://open.kakao.com/o/gDs6T23c ( '펫로스 쉼터' 오픈채팅방)


마지막 방법은 토토의 사진을 합성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는 토토의 새로운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나는 상상 속에서 녀석을 다시 불러냈습니다. 무지개나라, 빛이 스며드는 초록의 들판에서 토토는 자유롭게 뛰놀고,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며 마음껏 짖고, 그동안 잃었던 기력을 되찾은 채 풍족하게 먹고, 웃고, 즐기고 있었죠.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풍경이었지만, 나는 그 상상의 조각들을 모아 사진 속에 토토를 다시 살려내곤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계속해서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며 나는 잠시 현실을 피해 달아났죠. 그 합성 사진 속에서 토토는 언제나처럼 나를 보고 웃습니다.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헤매며, 나는 그렇게 토토와의 이별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연습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갑니다. 사실, 버티는 삶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 버팀이 더 격렬해졌습니다. 슬픔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은 어쩌면 서글픈 일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삶을 이어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제는 슬픔 속에서 토토를 기억하기보다는, 그 아이가 내 삶에 가져다준 커다란 행복을 더 많이 기억하려 합니다. 토토는 내게 가장 확실하고 큰 행복이었으니까요.



토토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2



언니, 오늘이 내가 떠난 지 49일 되는 날이잖아? 언니가 집에 엄청 맛있는 거 잔뜩 준비해놨더라! 감자튀김, 햄버거, 닭강정, 복숭아, 바나나, 자몽... 내가 좋아했던 쌀껌이랑 치카치카 껌까지! 대박! 도착하자마자 싹 다 먹어버렸어! 친구들도 불러서 같이 나눠 먹었지. 다들 우리 언니가 준비한 음식에 감탄했어. 흐흐, 김토토 으쓱했지!


오늘 49일을 맞아서 나는 무지개나라에서 특별한 능력을 하나 얻게 됐어. 바로 ‘사과머리 주파수 소통 능력’이야! 언니가 늘 내 사과머리 귀엽다고 했던 거 기억나? 이제 그 사과머리가 그냥 귀여운 게 아니라 아주 특별한 소통 도구가 됐어! 덕분에 이제 나는 모든 동물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어. 이 주파수로는 동물 친구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내가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대화가 훨씬 깊어졌어. 그리고 언니랑도 주파수로 연결이 되니까, 이제는 더 많이 알아들을 수 있어! 사실 내가 지구에 있을 때는 언니 말 다 알아듣는 척했지만, 솔직히 100%는 아니었거든. 이제는 주파수 덕분에 언니랑도 진짜 제대로 소통할 수 있어. 너무 멋지지 않아?


오늘 이렇게 집에 다시 와 보니까, 마치 어제 떠났던 것처럼 모든 게 익숙해. 별이는 여전히 배 까뒤집고 자고 있고, 알리는 언니 발 밑에서 조용히 자고 있더라. 집에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너무 반가워서 냄새도 맡고, 언니의 따뜻한 기운도 다시 느낄 수 있었어. 여기, 참 좋았지. 하지만 언니도 알잖아. 내가 만약 여기에 계속 있었다면, 나는 계속 아팠을 거야. 언니도 그걸 보고 많이 아파했겠지. 나는 내가 몸이 아픈 것보다도 언니가 힘든거, 그게 제일 힘들었어. 이제는 그런 걱정 할 필요 없으니까, 언니도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이제 아프지 않거든. 여기선 정말 잘 지내고 있어.


오늘 배불리 먹고, 언니가 잠드는 거 보고 다시 무지개 나라로 돌아갈게. 언제나 곁에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언니.


-언니의 확실한 행복인 토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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