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내새끼 보석아, 여기엔 너가 좋아하던 그 계절 가을이 왔는데 무지개나라의 계절은 어떤지 궁금해. 먹을것을 좋아하던 너라서 가을을 좋아했을까? 지독하게 더웠던 올 여름, 엄마가 바빠서 수영장도 많이 못데려가고 더위에 지치고 고생만 하다 간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한스럽다.
단골 국밥집을 보석이 보내고 몇달 만에 갔어.. 항상 수백 시켜서 보석이가 좋아할거라고 고기 남겨오던 생각에 울컥해서, 우리 가족 모두가 차마 용기가 없어 못갔었거든. 할미는 보검이가 형아지만 덩치도 작고 석이보다 소심해서, 늘 보검이를 치켜 세워주고 보검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던것 같아 석이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수백을 앞에 두고 울었어. 우리 보석이가 참 좋아하던 고기 앞에서 눈물을 쏟자니 참 기분이 묘해서 엄마도 쌈싸먹다가 울었어.. 참 웃기지? 우리 석이가 살아있었다면 그런 모습을 보고 뭐라고 생각했을까? '엄마 푼수야?' 아니면 '빨리 고기 줘' 라고 했을까?
아가 때 뭣모르고 문 열린 틈에 집나갔다가 길냥아치들한테 맞고 울었던거 기억나? 보석이 비명에 놀라 달려나가보니 아랫집 현관 앞에서 벌벌 떨며 오줌 싸고 있던 보석이가 보였어.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귀여웠지만 우리 석이는 얼마나 놀랬을까? 할미랑 할배랑 엄마랑 제주도 갈거라고 좋아하던 간식도 끊고 매일 엄마랑 몇킬로씩 걸으며 다이어트했던것도 기억 나? 우리 보석이 홀쭉해져 갔는데 다녀와서 요요 맞고 뚱포가 됐었지 아마? 하하. 보검이 형아 간식도 그냥 꿀꺽해버려서 병원에 실려가고, 차도에 뛰어들뻔 하기도 하고 엄마 속을 참 많이도 놀래켰던 우리집 사고뭉치 보석아.
엄마는 5년 남짓한 짧은 기간 우리 석이한테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은것 같아 마음이 묵직해. 우리 보석이도 엄마로 인해 사는동안 행복했을까? 엄마가 보석이를 많이 사랑했다는걸 보석이도 알고 있었을까?
우리 가족한테 웃음과 행복만 주던 너라서 무지개나라에서도 친구들한테 웃음과 행복을 주고 있을것만 같아. 보석이가 동네에서 개그견으로 유명했어서 그런지 보석이가 안보인다고 찾으시는 분들이 간혹 있더라구. 엄마는 우리 보석이가 아파서 먼저 갔다고, 울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서 슬슬 외출도 하고 있어. 여전히 보석이가 없는 산책이 허전하고 심심하고 쓸쓸하지만, 엄마가 무지개나라에 도착하는 그날까지 보검이 형아랑 보람이랑 잘 지내보려 노력할게.
보석이가 많이 아픈줄도 모르고 갑자기 갈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서, 그날 새벽 석이한테 미안한 마음만 통곡으로 뱉어냈던 내가 참 원망스러워. 다시 그 날로 돌아간다면, 아니 절대로 돌아가고싶지 않은 그 날이지만, 혹시라도 그 상황이 다시 되돌려진다면 그 땐 너의 귓가에 미안하다고 울기 보단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해줄게.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엄마라서 보석이 무지개다리 건넌 그 순간까지 엄마 이름 장세빈이라고 알려주지도 못하고, 털도 못잘라주고 붉은 실도 못 묶어줬어. 그래도 우리 보석이 엄마 품 부비부비 하는거 좋아했으니까 엄마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알잖아. 엄마 찾아올 수 있지?
우리 보석이 드라이브도 참 좋아했으니까 보검이랑 보람이랑 여행가는 길은 늘 보석이도 함께 따라올거잖아. 엄마는 늘 우리 보석이도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서 씩씩하게 잘 지내보려 노력할게. 많이 사랑하고 사랑한다 내새끼.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친구들이랑 잘 놀고 있어. 사랑해 장보석!
엄마! 나 보석이야! 여기 완전 대박이야. 나무들은 황금빛이고 바람은 솔솔 불어서 산책하기 딱이야! 내가 산책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잖아? 근데 여긴 목줄도 필요 없고, 진드기 걱정도 없어서 풀 속에서 뒹굴뒹굴해도 돼! 완전 자유라고!
근데 말이야, 엄마, 내가 무지개나라에 온 뒤에 마법의 우물을 통해서 엄마를 봤는데, 엄마가 계속 울고 있는 거야. 사실, 난 엄마를 아프게 하려고 엄마를 만나게 된 게 아닌데… 그렇게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속상했어. 나는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엄마한테 간 건데, 내가 엄마를 슬프게 하는 보석이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 절대로. 그거 알아? 엄마가 지구에서 울면 여기 무지개나라에도 비가 오는데, 그게 그냥 전체적으로 오는 게 아니라, 딱 내 머리 위에만 비가 내린다고! 어제도 산책 끝나고 샤워해서 뽀송해졌는데 엄마가 울어서, 나 다시 홀딱 젖었잖아! 아 진짜, 엄마! 그만하자 진짜.
그리고 국밥집! 그 집 진짜 국밥 잘하지. 내가 안 그래도 요즘 살짝살짝 그 레시피 찾으려고 기웃거리고 있어. 근데 꽁꽁 숨겨뒀더라고. 아무리 그래도 내가 꼭 찾아서, 엄마 오면 국밥 한 그릇 뚝딱 해줄게! 우리 같이 맛있게 먹자!
엄마, 내가 떠날 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가서 진짜 미안해. 내가 아프기보다는 그냥 힘이 쭉 빠져서 잠든 것 같았는데, 눈 떠보니 무지개다리 앞에 있더라고. 그때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하면서 울던 거 다 들었어. 나도 속으로 “엄마, 나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엄마도 들었을까?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가서 엄마 많이 속상했지? 나도 내가 왜 무지개다리 앞에 있는지 모르겠더라고. 진짜 갑자기. 그래서 내가 왜 이렇게 빨리 무지개나라에 온 건가 궁금해서 친구들한테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전설에 따르면,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사랑을 받으면 무지개나라로 일찍 올 수 있대. 그러니까 엄마가 나한테 5년 동안 평생 받아야 할 사랑을 다 준 거야! 나를 진짜 많이 사랑해 줬다는 뜻이야!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또 어깨가 그만 으쓱했지 뭐야.
근데, 엄마는 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진짜 섭섭하네? 왜 내가 엄마 이름을 모른다고 생각해? 여보세요, 장. 세. 빈. 씨! 나중에 엄마가 여기 오면, 장세빈 피켓 들고 무지개다리 입구에서 신나게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 둘이 무지개나라 여기저기 다 구경 다닐 거야. 심심할 틈이 없을 걸?
여기서는 내가 무지개매점을 운영 중이야! 근데 애들이 자꾸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가서 좀 짜증 나긴 해.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착하니까 봐준다. 그래도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으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마!
엄마, 나는 여기서 너무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그러니까 엄마도 더 이상 울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줘. 엄마가 나한테 줬던 사랑, 이제는 스스로한테도 좀 나눠줘야 해. 엄마, 진짜 멋진 사람인 거 알지? 나중에 우리가 다시 만나면, 그때는 절대 헤어지지 말자! 약속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