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처음 낳았을 때,
나는 실망에 가까운 당혹감을 느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아빠를 꼭 빼닮은 얼굴이었다.
눈, 코, 입은 물론이고, 눈썹 모양, 이마 너비까지.
그 작은 얼굴에 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딸은 아빠를 닮아야 잘 산다더라’는 말이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나를 닮은 아이가 있다면 얼마나 신기할까?’
싶은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라는 내내,
한 번의 반전도 없이
아빠를 쏙 빼닮아가는 아이를 보며
그 생각은 꽤 오래 이어졌다.
그러다 작년,
다똥이와 단둘이 경주로 모녀 여행을 떠났다.
둘만의 여행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 여행에서 처음으로 느꼈다.
이 아이, 마음과 행동이 나를 꼭 빼닮았구나.
나는 전형적인 계획형 인간이다.
특히 여행은 더더욱.
숙소 체크인, 카페 위치, 교통편, 포토존 동선까지.
빈틈없는 일정표는 계획형 인간이 아닌 친구들에겐
숨이 턱 막히는 일정이기도 하다.
다똥이와의 여행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출발 전 나는 꼼꼼하게 일정을 짰고,
기차에서 내려 경주역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일정표를 꺼내 들고 말했다.
“엄마, 이번엔 버스 타고 이동이네요?”
“이 음식점에선 우리 뭐 먹어요?"
그 이후에도
"이번엔 카페타임이에요!"
전혀 피곤한 기색도 없이,
마치 작은 여행 매니저처럼
일정을 파악하고 따라왔다.
‘여행은 사진, 사진은 곧 여행’이라는
나만의 철학에 따라
나는 아침 첫 일정으로 대릉원 포토존 오픈런을 계획했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자고 말했을 때,
약간의 투정은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 아이, 한 치의 짜증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1등으로 도착한 포토존 앞에
삼각대를 세우고는
"엄마 이렇게 해봐요!" 하며
온갖 포즈를 시도하고 춤을 추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 아이는 나를 닮았다.
닮은 곳 하나 없는 얼굴이지만,
여행을 대하는 마음은 꼭 나를 빼닮았다.
여행 중, 갑작스레 비가 쏟아졌다.
일정을 수정하려 혼자 분주해지던 나를 보며
다똥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호텔 잡자, 호텔!
오늘 돌아가는 날이면 어때요~
잠깐 쉬다 나오면 되는 거지!”
나는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계획에 강하면서도,
즐거운 여행을 망치지 않으려 너스레 떠는 모습이
왠지 나보다 더 나 같았다.
사실 모녀 여행은 처음이 아니었다.
여러 번 함께 다녀온 적 있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예전엔
내 손에 이끌려 여행하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스스로 여행을 주도하고
변화에 유연하며,
그 과정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점점 나의 완성형처럼 자라나는 너를 보며
나는 여러 번 놀라고,
여러 번 감동했다.
닮은 구석 하나 없이 태어난 아이가
이제는 나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가족이면서도,
친구보다 더 친구 같은 존재.
지금의 너는,
내 인생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