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성장에 맞춰
조금 더 넓은 평수로 이사를 계획했다.
마침 마음에 드는 집이 나와,
지금 살고 있던 집을 매도하고
새 보금자리로 옮기기로 했다.
첫 번째 순서는
지금 우리 집을 파는 것이었다.
인생 첫 매도 계약.
부동산 책상에 앉아 서류에 도장을 꾹꾹 찍으며
속으로 ‘이거 진짜 맞지?’를 되뇌던 그날.
30분 만에 모든 계약이 끝났다.
긴장 가득했던 계약을 마친 후,
후련하면서도 뿌듯한 마음으로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동네 고깃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아이의 첫걸음들이 담긴 집을 팔았다는 건
왠지 모르게 뭉클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소주 한 잔이 간절했다.
고깃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매도 계약이 잘 돼서 기분이 좋은 건가 싶었는데
곧 이야기를 꺼냈다.
“나 진짜 깜짝 놀랐잖아.
우리 집 사기로 한 예비 신혼부부,
그 뒤쪽에 예비 시어머니도 같이 계셨던 거 알아?”
“응? 왜?”
“그 예비 시어머니가 말이야~
며느리 앞에 두고 자꾸 너 예쁘다고 칭찬하더라?”
“…엥? 뭐라고?”
“처음엔 그냥 한두 번인 줄 알았지.
근데 진짜 계속!
‘어쩜 저렇게 곱냐’, ‘어머, 저리 예쁘게 생겼냐’며
칭찬 폭격을 퍼붓더라고.
와, 진짜로 계속!”
그 얘기를 들은 나는 순간 술이 확 깼다.
같은 며느리 입장인지라,
예비 며느리 기분은 어땠을까 싶고,
뒤늦게 낯이 뜨거워지며
‘어머, 진짜 그런 일이?’ 싶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꽤 유쾌했던 모양이다.
“푸하하하!” 하고 통쾌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날의 술은 참 달았다.
어쩌면 집을 잘 팔아서가 아니라,
내 외모 칭찬에 들뜬 남편의 너스레 덕분에 더 취했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짬뽕으로 해장을 하며
남편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좀 불안한데…
우리 집, 매도 취소될 수도 있을 것 같아.”
“… 뭐?! 왜?!”
“그 며느리 될 분이 화나서 파혼하자고 할 수도 있잖아.
예비 시어머니가 자꾸 당신만 예쁘다고 하니까.
아직도 예비 신랑이랑 싸우고 있을지도 몰라.
그럼 우리 집도 같이 날아가는 거 아니야?”
이번엔 내가 웃을 차례였다.
“푸하하하!”
파혼에 집 계약 파기까지…
이 사람, 다음 날까지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남편의 너스레는 여전히 여전하다.
그래서 느꼈다.
이 날의 에피소드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 가족의 ‘이사 이야기’ 속에서
웃음 포인트로 남을 거라고.
“그 예비시어머니가 당신 예쁘다고 해서
우리 이사 못할 뻔했다니까~”
그날의 너스레 한 조각,
오늘도 한바탕 웃으며 꺼내본다.
남편은 그날
“내 와이프 예쁘다”는 말을
단 한 번도 직접 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상황을 들려주는 방식이며,
괜히 파혼 운운하며 웃긴 척 장난치는 모습.
말보다 확신에 찬 눈빛과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그날 남편은
아주 은근하게,
아주 확실하게
자기식 플러팅을 건네고 있었다.
그 한마디 말보다 더 깊게,
그 농담 하나에 담긴 애정 덕분에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고,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늘 그렇듯 남편의 플러팅 덕분에
내 자존감도 슬그머니 올라섰다.
누군가의 시선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예쁘다고 느끼게 될 때
그게 가장 오랫동안
나를 웃게 한다는 걸
그날, 다시금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