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시라는데… 아이 하원은 누가 시켜요?”
아이가 어릴 때 자주 듣던 질문이다.
그럴 때 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저요!”가 아니라, “저랑 남편이요!”라고.
누구 하나의 고군분투가 아닌,
우리 셋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팀플레이.
오늘은 그 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처음부터 담대하진 않았다.
친정엄마의 손길 없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 걱정의 시작은 오직 ‘육아’였다.
임신 중이던 어느 날,
맘카페에 ‘엄마 없이’, ‘친정엄마 없이’ 같은 키워드를 밤마다 검색하던 내가 떠오른다.
그때의 불안함이 지금은 조금 우습기도 하다.
나와 남편, 그리고 딸 다똥이.
우리는 어느새 함께 걸어가는 인생 프로젝트 팀이 되어 있었다.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지.”
그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맞벌이를 하며,
그 어떤 도움도 없이 육아를 해낸다는 건
계속되는 선택과 조율, 그리고 약간의 희생이 따른다.
계획형 인간인 나에겐 육아의 걱정은 너무나도 긴 여정으로 느껴졌다.
끝도 보이지 않고, 매뉴얼도 없고, 정답도 없었다.
그런 내게 남편은 늘 이렇게 말했다.
“닥치면 다 해. 걱정하지 마.”
무책임하게만 들리던 그 말이 이제는 나의 삶의 태도가 되어버렸다.
묘하게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닥치고 해내며’ 여기까지 왔다.
우리 팀의 규칙은 ‘분업’이다.
등원과 하원 담당을 나눴고,
회사도 가족 중심으로 재정비했다.
나는 단축 근무가 가능한 회사로 이직했고,
남편이 이직할 땐 우리가 사는 도시 안에서 고려했다.
우리는 ‘출퇴근보다 더 중요한 건 함께 하는 삶’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이가 들고 다니는 물통 설거지를 누가 할지,
아이를 씻기는 요일은 어떻게 나눌지,
아이가 밤 새 아플 때는 누가 먼저 자고 교대할지,
그런 작고 소소한 것들을 늘 함께 논의하며 육아했다.
말 그대로, 우리는 ‘함께’였다.
그래서 우리에게 육아는 고립이 아니었다.
오히려 연결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 육아는
처음엔 외롭고, 버거운 여정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 안에서 더 끈끈해졌고, 더 많이 웃었다.
딸아이가 하루 종일 수다를 퍼붓는 날이면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그 수다의 바통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다똥이 오늘 어땠어?”
그 말 한마디에, 아이는 다시 생기를 얻고 우리는 서로의 하루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누구도 지치지 않게 하기 위한 ‘업무분장’을 만들어갔다.
서로를 위해, 아이를 위해,
우리 팀을 지켜내기 위한 목표가 분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 아이는 내가 키운다’는
너무도 당연한 말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그저 책임이 아니라,
가장 애틋하고 소중한 프로젝트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 셋이 함께 만든 이 팀으로
세상에 없던 하루를
조금씩, 하지만 단단하게 완성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