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시간 여행에 필요한 사전 준비물
회사 생활을 해야 하는 인생의 전반기는 사실 남자의 군입대 의무같이 '강제적'인 것이다. 입대를 미룰 수는 있지만 안 갈 수는 없고 대체복무라도 해야 끝난다. 나도 그랬다. 정말 가기 싫었지만 가야만 했다. 계절의 여왕 5월, 군대 연병장의 살벌한 땡볕은 학교 캠퍼스의 그 호사스럽고 푸르렀던 기억과 겹치며 아찔한 현기증을 유발했다. 일생일대 가장 통제적이고 강압적인 시기지만 그래도 건강히 잘 버티기만 하면 다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니 이건 Next 단계가 명확했다.
긴 회사생활이 끝나는 인생 후반기는 뭘까? 나도 전반기를 보내며 늘 궁금했던 주제다.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뭔가 불안한.. 그런 막연한 단계였다. 뭘까? 궁금하여 이 책 저책 뒤적여보면 인생 후반기는 이제 '선택'의 시기라 한다.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는 1차적인 책임을 다했으니 자유롭게 남은 인생의 시간들을 골라 선택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뭘 선택하라는 건가, 선택지가 하나도 안 보이는데.. 주관식인데..'
나는 퇴사 3년 차다.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살아갈까? 누가 선택지를 골라보라고 하면 좋겠지만 눈앞의 하얀 종이에는 선택할 게 없다. 그냥 백지상태다. 답을 찾기 어려우니 별수 없이 남들이 어떤 걸 고르나 '커닝'이라도 해봐야 한다.
물론 그게 정답인지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 방법밖에 모르니 이게 또 현실이다. 최근 3년간 주변 탐색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슬슬 '감'이 오기는 했다. 만나서 서로 안부를 주고받을 때 그리고 SNS에 가장 많이 나오는 표현은 이런 것이었다.
"어떻게 지내? 나는 그럭저럭.. 근데 앞으로 뭐 하면 좋을까?"
이쯤 되면 후반기는 몇 가지 답 중에서 오답을 피해 정답을 선택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완전히 새로 답을 써야 하는 창조와 상상의 영역이다. 누가 골라주고 대신 써주지 않는다. 모르니까. 처음 겪는 상황이다. 전에는 회사에서 '뭐 뭐' 하라고 시간표를 짜주기도 했는데.. 각자 자기 인생의 시간표를 짜야한다.
'자기 인생의 예술가라도 돼야 하나..'
30년 일하고.. 퇴사란 어찌 보면 사회로부터 1차 용도가 폐기된 거랑 조금은 비슷하다. 너무 심각한 표현일까? 위축될 거는 없다. 스스로 2차 용도를 새로 만들면 되니까. 그런 '자유'가 주어졌으니까. 내 친구는 이게 또 압박 내지는 부담이라고도 한다. 맞다. 사실 자유는 기대한 것보다 불편했다. 불편한 진실이다. 거기다가 나이가 들어가니 체력도 떨어지고 사실 만사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방심하면 이런저런 작은 근심도 꼬리를 문다.
'누가 뭐 뺑뺑이라도 안 돌려주나..'
군 복무시절 '군대 생활 어찌 보내나..' 여유 잡고 생각회로 돌리고 있으면 이유도 모른 체 호출돼 연병장을 돌던 뺑뺑이가 생각난다. 근데 이제 아무도 이렇게 돌려주지 않는다. 그럼 혼자 스스로 뺑뺑이를 돌린다. 산으로, 골프장으로, 해외 여행지로 자유를 찾아 아니 빈 공간을 채워보려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한다.
'이것이 자유인가? 맞긴 하는데..'
돈이 많다면 소비하며 계속 자유를 찾아볼 수 있겠다. 하지만 보통 한정된 돈이나 정해진 자산 크기로는 얼마 못 가 한계에 부딪힌다. 나와 주변의 경험을 종합해 보면 퇴사 후 2~3년이 고비 같다. 해보고 싶은 거 좀 하다 끝나가면 누구에게나 그 손님이 찾아온다. 이유 없이 고독해지고 수시로 밀려오는 무료함.. 이걸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아~ 자산을 더 모았어야 할까' 그렇지는 않은 거 같다. 끝도 없고 이미 불가능하다. 그럼 '계속 나가서 돈을 더 벌어야 할까?' 이건 사람마다 한계가 있다. 특히 나 같은 일반 관리자 출신의 제너럴리스트는 단기적이고 단순한 일을 찾아야 한다. 몇 년은 더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거친 '감정 소모'를 버틸 자신이 없다. 그럼 뭐 하자는 건가.. 완전히 새로 그려봐야 한다.
'그래서.. 퇴사 후 첫 관문은 자기 삶의 주제를 찾아야 한다.'
그럼 좀 거창해진다. 인생 후반기 '나의 삶의 주제'를 찾는다.. 다시 머릿속이 하얘진다. 내 창의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게 점점 힘들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와다 히데키 정신과 교수는 말한다. "40대부터 60대까지 뇌의 전두엽 기능이 위축되고 호르몬 분비가 감소한다. 전두엽 기능이 저하되면 감정조절이 안되고 창의성이 떨어진다. 그야말로 게으른 중장년, 무기력한 노인이 되어가는 전형적인 증상을 갖게 된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신체와 마음의 변화다. 얼마 전 어느 부동산 중개소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역세권의 오피스텔 월세를 많이 중개하시는 분이다.
"여러 호실을 가지신 분들을 알아요. 노후 임대수익을 위해 준비 잘해 오신 분들이죠. 이분들이 매년 나이가 들어가시는데 관리할게 생기면 짜증부터 내세요.. 전보다 더 심해져요.. 그래서 왜요? 물어보면 자기도 모르게 일단 짜증부터 난다고 하세요.."
경제적으로 노후 준비가 제법 돼 있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별거 아닌 일도 계획에 없던 일이 생기면 짜증이 먼저 난다. 창의력은커녕 자기도 알 수 없는 자기감정에 휘둘릴 때가 생긴다. 생각과 감정이 따로 논다. 그래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말이 맞다. 촉촉하게 살아있는 밝은 감정이 더 필요하다.
퇴사 후 새로 시작하는 시간은 낯선 시간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계가 익숙하기 때문에 계속 머물고 싶긴 하지만 있을 자리가 더 이상은 없다. 그래도 계속 머물려고만 한다면 우울해진다. 이제 다른 시간의 영역으로 그냥 나가야 한다. 순간 이동하는데 필요한 연료는 '호기심'이다.
오늘도 이렇게 삶의 주제에 대해 '끙끙' 대보기는 하는데 나른한 초여름 날씨에 몸은 졸음으로 화답한다. 무뎌져가는 호기심.. 나를 살살 달랜다. '뭐래.. 그게 그거지. 새로운 게 더 있긴 할까?'
그래도 내 머릿속 '뉴런'에 에너지를 계속 불어넣어야겠다. 낯선 분야, 익숙하지 않던 것들에게 호기심을 계속 던져본다. 그리고 낯선 경험 장치들을 계속 만들어 작동시켜 본다. 매번 해외에 나갈 수도 없고..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아내와 이천과 여주의 그릇가게들을 둘러보려 한다. 제각각 다른 모습과 색깔을 가진 도자 그릇들을 보면 의외로 눈이 즐거워진다. 審美眼이 이런 거던가.
'갈 때마다 어떤 그릇이 있을지 예상이 안돼.. 의외로 항상 낯선 순간을 보게 된다.'
삶의 주제를 찾기 위해서는 낯선 순간들에 대한 '내 감정 살려보기'가 먼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