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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롭 Oct 27. 2024

그리움이 사무쳐 누대에 기대었네

자규루에서

장릉에서 동강 둔치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 기사에게 묻는데, 앞 좌석에서 내 물음을 들은 한 어른은 자신도 동강 둔치로 가는 길이니 같이 내리면 된다고 했다. 그를 따라 어느 정류장에 내려 길을 걸으며 나는 영월의 지형에서 내가 받은 인상을 말했다. 영월에 올 때마다 산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게 신기하고, 어느 쪽을 바라봐도 산으로 막혀 있다고. 내가 말하자 그는 동강 둔치에서 보이는 산들의 이름을 알려주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태풍이 없다고 말했다. 영월은 복 받은 땅이라고.


단종이 사사된 이후 영월은 귀신 우는 소리가 때때로 들려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영월에 부임하는 군수들이 연이어 갑자기 죽는 재앙이 발생해 모두 그곳을 죽음의 땅으로 여겼다는 옛 기록을 보았다. 한이 서린 영월 땅이 어느덧 해원을 하고 있는지 지금 영월 주민은 영월을 복 받은 땅으로 여기며 외지인인 나는 영월을 좋아한다.  


새삼 떠오른다. 영월의 가로수. 읍내 큰길가에 줄지어 뿌리내린 소나무가. 한겨울에도 독야청청하여 충의 상징인 소나무가 가로수라니. 택시 기사의 의기 있는 목소리도 떠오른다. 읍내 한복판을 지날 때 묻지 않아도 기사는 관풍헌(觀風軒)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단종이 살던 곳이라고 말했다. 나무도 사람도 모두 단종을 받들고 있는 영월.


단종은 처음에 청령포에 머물렀으나 얼마 뒤 장마에 강물이 불어나 수재를 입을 염려가 있어 객사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관풍헌 곁에는 인도와 담장을 경계로 자규루(子規樓)가 우뚝 서 있다. 원래 이름은 매죽루(梅竹樓)이지만 단종이 그곳에 올라서 자규 울음소리를 듣고 자규사(子規詞)와 자규시(子規詩)를 지은 후 자규루로 이름이 바뀌었다. 



자규루(子規樓)



내가 자규루에 오른 아침 새소리가 많이 들렸다. 혹시 자규 즉 두견새의 소리도 들릴까 하는 생각을 잠시 생각했다. 돌아가야 해[不如歸] 하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두견새 울음소리. 그 아침 한꺼번에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는 웃음소리였다. 두견새는 밤에 우는 새가 아닌가. 자규사와 자규시를 지었듯이 단종은 밤에 누각에 자주 오르지 않았을까. 잠을 이루려고 해도 시름으로 잠들지 못할 때. 


시름겨워 누각에 오른 단종은 정순왕후를 그리며 멀리 바라봤을 것이다. 그런데 자규루에서 어디를 바라봐도 산이다. 높은 누각에 올라도 산에 눈길이 가로막힌 막막하고 애달픈 마음이 떠올라 고개를 젖히는데, 단종이 자규루에서 지은 자규사가 새겨진 현판이 불현듯 눈에 들어왔다.      



月欲低蜀魄啼  

달은 지려고 하는데 두견새 울어대니 

相思憶倚樓頭  

그리움이 사무쳐 누대에 기대었네 

爾聲苦我心哀  

괴로운 네 울음소리에 내 마음 슬퍼지니 

無爾聲無我愁 

네 울음소리 없으면 내 시름도 없으련만 

爲報天下苦惱人 

천하의 괴로운 이들이여 

愼莫登春三月子規樓 

부디 춘삼월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 


단종, <영월군 누각에서 짓다[寧越郡樓作]>     



달이 지려는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그리움이 사무쳐 누대에 기대었다.” 돌아가지 못하는 그의 큰 시름은 그리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에게 돌아가야 해, 하고 재촉하는 것처럼 들리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돌아가지 못하는 그를 자극한다. 두견새의 그 울음소리는 바로 자기 내면의 소리와 같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고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신세를 두견새 울음소리가 일깨우기 때문에 그는 더욱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리하여 두견새를 탓한다. 네 울음소리 때문에 슬프다고. 다시 말해 네가 울지 않으면 시름도 없다는 것. 자기 마음을 대변하는 듯 구슬피 우는 두견새의 울음을 그치게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으니 세상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부디 춘삼월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 


세상 사람에게 전하는 이 말에 그의 고통이 담겨 있다. 옛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자규루에서 이런 노래나 시를 짓기도 했지만 밤에 사람을 시켜 피리를 불게 하기도 했다. 피리 소리가 먼 마을까지 들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미루어 보면 그는 피리 소리에 맞춰 애달픈 마음을 창하듯이 소리 내어 부른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자규루 현판에는 자규사(子規詞)밖에 없지만 단종이 그곳에서 두견새 울음소리를 듣고 쓴 자규시(子規詩)도 전해온다. 자규사가 그의 고통을 세상 사람들에게 호소한 것이라면 자규시는 무정한 하늘을 향해 호소한 것이다. 이 호소는 두견새가 슬피 우는 까닭 곧 두견새의 원통함에 대해 말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로부터 두견새 소리를 듣고 그가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一自寃禽出帝宮 

원통한 새가 궁중에서 쫓겨난 뒤로 

孤身隻影碧山中 

짝을 잃고 외로이 푸른 산속에 있네

假眠夜夜眠無假 

잠을 청해도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窮恨年年恨不窮 

한이 극에 달해도 해마다 한은 끝없네

聲斷曉岑殘月白 

울음소리 그친 새벽 산에 달은 밝고

血流春谷落花紅 

피 흐르는 듯한 봄 골짝에 낙화는 붉네

天聾尙未聞哀訴 

하늘은 귀먹어 애달픈 호소 못 듣는데

胡乃愁人耳獨聰 

어찌하여 시름겨운 이 사람 귀만 밝은지


단종, <영월군 누각에서 짓다[寧越郡樓作]>     



두견새가 원래(지난 생에) 있던 곳은 궁전이다. 그는 황제였다. 촉나라의 망제. 자신이 임명한 재상 별령에게 황제의 자리를 빼앗기고 서산으로 쫓겨났다. 지위를 잃고 사는 곳만 바뀐 것이 아니다. 홀몸이다. 자신의 그림자나 마주할 뿐인 외로운 신세다. 궁궐에서 쫓겨나 정순왕후와 생이별하고 사방이 산인 영월 땅에 갇힌 단종 자신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나라도 사랑도 잃고 살 이유가 없어진 그때. 


망제는 눈을 감고 죽고 싶었을까. 그는 죽는 대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눈을 감은 듯 어둠에 묻힌 밤. 죽은 듯이 잠에 의지해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으니. 깨어나는 순간 허물어지는 궁전일지라도 꿈속에서는 그리운 이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애석한 일은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 


한 때문이다. 한이 극에 달해서 날마다 우는 게 일이다. 절망하면 울지 않는다. 운다는 것은 삶에 일말이나마 희망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달이 이지러진 후 다시 차오르듯이 궁하면 통하는 것이 이치이므로. 자기 앞에 펼쳐질 생을 기대하며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아도 한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끝내 한을 품고 죽은 망제의 영혼은 이제 두견새가 되어 밤새도록 울고 있다. 피를 토할 때까지. 피는 곧 생명이니 목숨을 바쳐 우는 것이다. 촉나라 망제의 혼이 깃든 두견새의 한은 돌아가야 해[不如歸] 하고 우는 울음소리로 드러난다. 그래서 그 울음소리인 ‘불여귀(不如歸)’가 이름이 되어버린 두견새. 그토록 우는 까닭은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달라는 것이다. 단종은 두견새의 하소연을 고통스럽게 알아듣는다. 망제와 자신은 다르지 않으므로. 


돌아가야 해, 돌아가야 해, 끊임없이 말하는 듯한 두견새의 하소연이 뚝 끊어진 새벽. 그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두견새 울음소리를 들던 사람은 달빛 아래 피가 흐르는 듯한 골짜기를 발견한다. 두견화[진달래꽃]가 지고 있다. 두견새가 토한 피에 물든 꽃이라는. 


두견새가 부르짖다가 토한 피를 보고 그는 절규한다. 죽어라 하소연하는 두견새를 보고만 있는 하늘, 귀먹은 하늘을 향해. 또 어찌하여 두견새의 하소연을 자신은 이리도 잘 알아듣게 했는지를. 하늘에 대한 원망은 자신을 왜 이대로 내버려 두는가 하는 말과 다르지 않으리라.  


단종은 영월로 떠나며 화양정에서 전송하는 환관 안로에게 “성삼문의 모의를 내가 알고도 말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나의 죄이다”라고 했지만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왕위가 아니라고 본다. 채제공이 <자규루 상량문 [子規樓上樑文]>에서 단종은 왕위로 돌아가려는 뜻이 전혀 없었다고 했듯이.


망제의 혼인 두견새가 울음으로 하소연하듯이 그가 돌아가고 싶은 까닭은 바로 정순왕후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그를 낳다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문종은 그의 나이 12세에 돌아가셨으니 단종이 가장 애달픈 사람은 정순왕후 한 사람이다. 정순왕후가 그에게는 세상 전부인 것이다.


한 나라가 아니라 한 사람을 원한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하늘을 향한 소리 없는 절규에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당시 그의 자규시를 듣는 사람들이 귀를 막거나 담장 아래 무릎을 꿇고 절했듯이. 단종의 자규시는 바로 그가 그토록 듣기 고통스러워한 두견새의 울음소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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