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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Jul 21. 2022

텃밭 가족이 늘었습니다.

금귤 입양기

그 시절 동아리 선배, 지금은 육아 동지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성인이 되어서는 아무 말 안 해도 편안한 인연, 오랫동안 함께 할만한 인연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걸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까지 계속 연락하는 지인 대부분은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 학창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이더군요.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나면, 중요한 지인들만 옆에 남아있게 됩니다. 연락만 가끔 하던 휴대폰 연락처 메모리만 키워주던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잊혀가지요. 삶이 먹고살기 바빠지면,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줄어들고, 그렇게 진짜 가까운 지인들만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이해가 되네요.


대학교를 함께 다닌 선배 언니가 있습니다. 같은 학과도 아닌, 동아리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인연입니다. 어느덧 함께한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20대의 질풍노도 시기를 함께 했고, 30대가 되어서는 결혼과 육아를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첫 만남은 어려운 동아리 선배였는데, 오늘날 이 모습처럼 함께 나이 들어갈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입니다.



같은 취미, 같은 공감대


텃밭 가꾸기라는 취미를 가진 사람은 많지는 않습니다. 좋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친환경적이고 힐링이 될 것 같고 건강한 취미처럼 보이지만, 반대편 시작에서 바라보면 힘들고 더럽고 귀찮은 일이거든요. 그래서 제게는 텃밭 가꾸기라는 취미 공감대를 공유할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선배 언니의 인스타그램 사진에서 텃밭의 구수한 흙 내음을 발견했고, 함께 공감대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텃밭에 어떤 농작물을 들일지, 어떻게 키워야 잘 자랄지,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지인이 근처에 산다는 것 자체로 큰 힘이 됩니다.


언니는 여건이 안 돼서 베란다 텃밭부터 작게 시작했더군요. 텃밭을 향한 마음이 커지면서, 점점 텃밭의 크기도 발맞춰 확장해나가는 중이고요. 무엇보다 이 언니는 직접 먹던 과일에서 씨를 채취해서, 아이들과 함께 씨앗에서 새싹을 틔우는 과정도 함께 해나가며 살아있는 과학 시간을 집에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엄마의 시선에서 봤을 때, 바람직하지만 어쩌면 귀찮을 수 있는 작업을 엄마로서 꿋꿋이 해나가고 있습니다.



금귤 입양으로 텃밭 가족이 늘었습니다


선배 언니가 유독 빠져있는 농작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금귤입니다. 소위 낑깡이라고 하는 과실나무이지요. 어릴 적 부모님이 사주셔서 가끔 먹어보았던 그 새콤한 금귤에 언니는 푹 빠져있습니다. 얼마 전 금귤을 먹고 씨앗을 채취해서 직접 발아를 마친 언니는, 금귤 묘목을 2개 흔쾌히 제게 주었습니다. 금귤도 나무 과실이기에 묘목(苗木)이라는 명칭을 붙여주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니에게 받은 금귤은 아주 여리디여린 새싹과 같았죠. 원래 금귤이 처음에는 이렇게 생긴 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금귤의 상태를 어떤지를 떠나서, 언니가 고생 끝에 발아시킨 금귤을 선물받아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시금치를 씨앗 발아하려다가 모두 죽인 경험이 있기에, 씨앗 발아가 얼마나 힘든지 저도 백분 이해하거든요. 


오랜 시간과 노력 끝에 씨앗에서부터 자라난 금귤

 

묘목 두 개를 어떻게 키울까 고민하다가 하나는 텃밭에, 하나는 집에서 키워보기로 했습니다. 같은 묘목이 다른 장소에서 어떻게 다르게 자라는지 비교해 보고 싶기도 했고, 한 군데 몰아서 키우다가 두 개를 동시에 잃으면 속상할 것도 같아서죠. 언니도 저도, 금귤이 부디 잘 잘 자서 하루빨리 나무 모양새를 뽐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주 주말 텃밭으로 달려가서 금귤을 옮겨 심었습니다. 하나는 텃밭에 고이 심어주고, 하나는 집에서 챙겨간 화분에 옮겨 심어주었습니다. 여리디여린 금귤이 텃밭의 강한 햇빛을 받고 잘 살아 낼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텃밭의 좋은 흙, 바람, 그리고 햇빛이 오히려 금귤에게 힘이 되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텃밭에서 금귤을 옮겨심는 과정


집으로 옮겨온 금귤 하나는 낮에는 베란다 창가에서 햇빛과 바람을 쐬고, 밤에는 집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제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살기 때문에, 적어도 죽지는 않겠다 싶습니다. 


원래 저는 농작물에 이름까지 붙여주는 살가운 성격은 못됩니다. 하지만 이번 금귤에는 왠지 이름을 붙여주고, 곁에 두고 오랫동안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들더군요. 그래서 집에 있는 금귤에는 '금귤이'라는 이름과, 텃밭에 있는 금귤에는 '낑깡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입양'이라는 가볍지 않은 단어를 써서, '금귤 입양기'라는 부제를 적은 제 마음이 전해지시나요? 아무쪼록 이 녀석들이 많은 금귤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건강하게 오랫동안 잘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선배 언니와 제 관계처럼요.


집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는 '금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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