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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과 디지털 디톡스

절대 반지와 스마트폰의 상관관계

by 온느 Mar 08. 2025

디지털 디톡스가 한참 화두였지만, 딱히 관심이 없었다. 나는 본래 유튜브도 많이 안 보고, SNS도 잘 안 하니까 디지털 디톡스가 그리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이 정도면 나름 디지털 기기를 적당히 잘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단지 디지털 기기 사용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물리적으로도 단절되는 상태가 집중력과 생산성을 올려준다는 것을 우연히 경험했다.


본래 업무상 이유 때문에 스마트폰을 한시도 몸에서 떨어트리지 않는다. 불의의 시각에 급한 연락이 상시 올 수 있는 업무를 하는지라 언제든 전화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비애 때문이다. 그래서 자나깨나 늘 스마트폰과 함께이다.


하루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꺼져 가서 할 수 없이 침실에 충전시켜 두고 (충전기가 침실에만 있음..) 거실에서 이런저런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핸드폰이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없다는 데서 약간의 분리 불안을 느꼈지만.. 급한 연락은 워치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워치 알람으로 확인할 수 있어 급한 연락을 놓칠 염려는 없었다.


막상 핸드폰이 눈 앞에서 사라지고, 손을 뻗어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게 되니 굉장히 자유롭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속박에서 벗어난 기분? 평소 같으면 금방 산만해졌을텐데 훨씬 더 오랜 시간동안 집중할 수 있었다.


그 때 깨달았다. 스마트폰이 존재만으로도 나의 정신력과 집중력을 얼마나 갉아먹고 있는지.


핸드폰이 우연히 보이면 갑자기 아까 확인하고 답장하지 않은 메시지가 떠오른다거나, 뭘 검색해보고 싶다거나, 잊고 있던 은행 송금이 떠오른다거나, 괜시리 놓친 것은 없는지 메시지함을 확인해보고 싶어진다거나 그런 경험.. 나만 있을까? (더 최악은 그걸 하고 나니 다른 일이 또 생각난다거나, 또는 결국 그 일만 하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옆에 보인 광고나 알고리즘에 이끌려 아무런 필요도 없고 급하지도 않은 의미 없는 페이지들을 추가로 클릭해본다는 것..)


영화 <반지의 제왕>에는 절대 반지가 인간과 호빗의 마음과 정신을 어떻게 잠식하고 지배하는지 보여준다. 웬만큼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절대 반지의 농간(?)을 이겨낼 수 없고, 반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물리적으로 반지와 떨어지는 것이다. (프로도가 반지 때문에 승질을 부리는 걸 보고 샘이 대신 반지를 목에 걸고 있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작고 보잘 것 없는(?) 물건, 이쯤이야 스스로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물건에 사실 생각보다 많이 정신력을 잠식 당하고 있었고 행동을 조종 받고 있었다 (폰을 끊임없이 확인하거나 들여다보게끔) 는 점에서 나에게 스마트폰이 곧 절대 반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핸드폰에 그렇게까지 종속되지 않았었다. 핸드폰이 할 수 있는 것이라봐야 문자와 전화가 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이 가능한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기능과 속도가 점점 강력해질수록 나의 시간과 행동을 나도 모르게 더 많이 바치고(?) 있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이 깨달음 후로 요즘 일상 속 작지만 확실한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 중이다.


방법은 간단하고 정말 단순한데, 물리적 단절. 집에 오면 핸드폰을 다른 방에 둔다. 핸드폰으로 꼭 해야 하는 일이 생각 나면 그때만 방에 가서 그 일만 하고 다시 두고 나온다. 이 정도의 규칙을 정하면, 귀찮아서라도 정말 꼭 필요할 때만 폰을 쓰게 되는데, 그러면 생각보다 핸드폰을 꼭 봐야 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당장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핸드폰을 다른 데 둘 수는 없으니, 내 눈에 안 보이게 서랍에 넣어둔다. 또는 파우치로 안 보이게 덮어두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이렇게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다가 이번주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카톡과 문자 알림을 껐다.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알림이 집중력을 흐트린다고 이미 많이 알려져 있어서, 나도 관련 내용을 책으로 접하고 웬만한 어플 알림은 이미 다 꺼 둔 상태다. (모든 SNS 알림, 이메일 어플 알림, 포털 어플 알림, 쇼핑 어플, 배달 어플 등)


그럼에도 끄지 않고 남겨둔 최소한의 어플에 카톡 알림과 문자메시지 알림이 있었는데, 이 두 가지도 이번주 껐다.


업무상 연락은 텔레그램으로 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생각해보니 카톡으로 오는 연락은 몇시간 답하지 않는다 해서 큰일 날 것 없는 연락들이므로 과감히 off 했다.


알림이 오고, 메시지가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왠지 답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에 계속해서 주의를 빼앗기곤 했다. 단순 광고여서 확인하고 잊으면 되는 메시지라 하더라도 알람으로 인해 한 번 흐트러진 집중력을 다시 회복하느라 노력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메시지 알람을 끄고 나니 이런 것들로부터 해방되었다. 내가 원할 때, 여유가 있을 때 한꺼번에 확인하고 답장하면 되니, 조금 과장해서 시간의 주체성을 되찾아 온 거창한 기분마저 들었다.


스마트폰에서 아예 벗어날 수는 없고, 스마트폰이 많은 편리함과 즐거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느 순간 편리함과 즐거움보다 피로함을 더 많이 주게 된 것 같다.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피로한 부분을 최대한 차단하고, 약간의 편리함과 즐거움만 누리려고 한다.


나의 진짜 삶은 4.8인치 화면 속이 아니라 4.8인치 너머의 모든 곳에 있으니까. 이 작은 화면에 갇혀 있는 시간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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