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는 출산일기_가족을 완성시킨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1월 19일 목요일 저녁, 평소처럼 통화를 마치려는데 아내가 물었다.
“내일 갑자기 진통오면 어쩌지?”
“당연히 집에 가야지. 걱정하지마. 바로 갈테니까.”
당시 나는 해군 부사관 선발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선발시험과 면접때문에 출장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아내는 바쁜 일정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나는 아내를 달랜 후 일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1월 20일 금요일, 휴대폰 진동에 잠을 깼다.
‘벌써 아침인가? 얼마 안 잔 것 같은데...’
인상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바라보니 화면에 아내 얼굴이 떠 있다. 전화였다. 시간은 새벽 4시. 갑작스러운 전화였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벌써 예상할 수 있었다. 전화를 받기도 전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여보세요? 괜찮아?”
“나 이슬이 비치는데 어쩌지?”
“내가 가야 하는 거지?”
“...”
“지금 바로 갈게. 걱정하지 말고 있어.”
아내의 힘없는 목소리에 “내가 가야 하는 거지?” 하고 되물었던 것은 지금도 후회된다. 나는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걸까? 전화를 끊은 후에도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우왕좌왕하며 온 집을 헤집으며 짐을 챙겼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쉬지 않고 혼잣말을 해야했다.
“차분하게 하자. 괜찮아. 괜찮아. 침착해야 해.”
정신없이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려는데 키가 없다. 아무리 뒤져도 보이질 않는다.
“어디에 둔거야! 미친놈아!”
답답한 마음에 욕이 앞선다. 집에 보조키가 있으니 서둘러 다녀오면 될 일이다. 씩씩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집을 향해 급히 돌아서려는데 운전석 문에 꽂혀있는 키가 눈에 들어온다. 해골모양 키링이 약올리듯 흔들리고 있다. 출산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나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지하 주차장을 나서자마자 폭설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지난밤 보았던 일기예보가 떠오른다. 눈이 많이 온다고 갈 길을 늦출 수는 없었다. 제설차도 잠들어 있는 새벽 4시 30분, 나는 쌓인 눈을 범퍼로 밀어내며 천천히 차를 몰기 시작했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제설 작업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지는 눈 때문에 속력을 낼 수가 없었다. 평소에 두 시간이면 도착하던 거리를 네 시간만이 걸려 도착했다.
오전 9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내는 별 일 없이 잠들어 있었다. 이슬이 계속 비치고 있었지만 진통은 없었다. 아내가 일어난 후 늦은 아침을 챙겨 먹고 산부인과로 출발했다.
“예정일은 좀 남았는데, 아이가 아래쪽으로 많이 내려와 있어요. 바로 입원하셔서 출산 준비하시겠어요?”
의사 선생님이 병원에서 바로 출산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사양했다. 자연주의 출산을 위해 이미 조산원에 예약을 잡아두었기 때문이다. 용산에 있는 조산원에 아내의 상태를 전달했다.
“너무 일찍 조산원으로 오면 오히려 출산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어요. 편안한 환경에서 시간 보내고 진통주기가 10분 이내로 짧아지면 조산원으로 오세요.”
조산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보니 아직 서두를 필요가 없어보였다. 우리는 출산 전 마지막으로 둘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로 했다. 고깃집에서 점심을 먹고 서점을 산책했다. 주기적으로 배뭉침이 있었지만 아내가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저녁이 되면서 진통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진행이 더뎠다. 조산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호흡을 하고, 온수샤워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진통 주기는 30분에서 더 이상 줄지 않았다. 진통 주기가 10분으로 짧아진 것은 토요일 아침이 다 되어서였다. 하룻밤을 꼬박 새운 아내와 나는 토요일 아침 6시가 되어서야 조산원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허둥지둥 조산원을 향하는 우리 부부를 빼곤, 세상은 새삼스레 평화로웠다. 길가에 쌓인 눈 덕에 유난히 눈부신 토요일 아침이었다.
“안녕하세요. 둥글이 엄마, 아빠 왔어요.”
화장기 하나 없이 잔뜩 얼굴을 찡그린 여자와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조산원 문을 열고 들어섰다.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조산사 선생님과 둘라 선생님이 우리를 맞이했다. 쌀쌀한 겨울 공기가 무색하게 조산원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나는 조산사 선생님을 마주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아내는 도착과 동시에 태동 검사와 내진을 받았다. 조산사 선생님이 아내의 배에 태동 검사를 위한 장치를 둘렀다. 조산사 선생님과 둘라 선생님이 바쁘게 출산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가져온 짐을 정리했다. 가방에서 간단한 옷가지와 아기용품을 꺼내 서랍장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 와중에 알차게 챙겨온 방울토마토 두 통이 부끄러웠다. 아름답고, 감동스럽고, 지치고, 험난한 이야기가 조산원 방 한켠에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