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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태어난 아이

아빠가 쓰는 출산일기_가족을 완성시킨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by 바다별

첫 번째 내진은 결과가 좋았다. 아이는 이미 자궁 입구까지 내려와 있었고, 자궁 입구도 4cm 정도 열려 있었다. 크게 울리는 아이의 심장박동 소리는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한 우리에게 무탈한 출산을 예고하는 듯했다.



우리는 진통주기가 더 짧아지기를 기다리며 둥글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가끔 진통이 올 때마다 아내는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고, 나는 가만히 아내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출산은 계속 지연됐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아내의 진통 간격이 줄지 않았다. 이미 자궁입구까지 내려온 둥글이를 생각하면 서둘러야 했지만, 아내가 준비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설상가상으로 둥글이의 심장소리도 처음보다 많이 작아져 있었다.



아이가 가로로 있는 것 같아.”



조산사 선생님과 둘라 선생님의 속삭임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다행히 아내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머릿속에 온갖 불길한 상상이 스쳤다. 그 와중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힘들어하는 아내의 손을 붙잡아 주는 것뿐이었다.

결국 두 번째 내진을 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위치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조산사 선생님은 아이의 위치가 좋지 않다면 바로 대학병원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긴장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조산사 선생님이 인상을 풀며 말했다.



“다행이에요. 아기 머리가 만져지네요. 제대로 자리 잡고 있어요.”



다행히 둥글이의 자세는 문제없었다. 하지만 자궁 입구가 아직 충분히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조산사 선생님이 직접 자궁입구를 열어주기로 했다.



“조금 아플 거예요. 조금만 참아보세요.”



조산사 선생님의 말과는 달리 아내는 무척 힘들어했다. 10시간이 넘도록 묵묵히 진통을 참던 아내는 처음으로 엄마를 찾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엄마, 너무 아파.”



두 번째 내진을 마친 후에도 아내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상상도 못 할 고통을 견디고 있는 아내에게 “괜찮아, 힘내.” 같은 말은 조금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조용히 아내의 등과 어깨를 쓸어내리며, 나는 처음으로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내가 겪을 고통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자연주의 출산에 동의했을까? 병원에서 출산했다면 좀 덜 힘들게 아이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진통이 시작된 지 12시간이 지나자, 조산사 선생님은 한 번 더 내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너무 오래 자궁 입구에 끼어 있었어요. 한 번만 더 내진하고, 이제 아이 낳을게요. 이번만 하면 끝 이에요.”



하지만 아내는 절대 내진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산사 선생님도 둘라 선생님도 출산을 위해 내진이 필요하다 설명했지만, 이미 내진의 고통을 경험한 아내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아내를 설득해야 했다.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곁에서 보았기 때문에, 아내를 설득하는 내 마음은 무너지는 것 같았다. “둥글이를 위해서...”라는 뻔한 이야기에 결국 아내는 내진을 받기로 했다.

세 번째 내진까지 마치고 그제야 자궁입구가 충분히 열렸다. 이제 큰 일은 마쳤구나 싶었지만 착각이었다. 둥글이는 여전히 자궁 입구에 끼어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둥글이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힘을 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완전히 지쳐있었다. 나와 조산사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출산이 너무 길어져서 둥글이도 많이 힘들 거예요. 혹시 자궁 내에서 태변을 보게 되면 많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심장 소리부터 한번 더 확인할게요. 더 늦어지면 병원으로 이동해야 해요.”



조산사 선생님이 둥글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 장비를 준비했다. 어쩌면 병원으로 가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지려는 순간, 조산사 선생님이 장비를 작동시켰다.



“쿵. 쾅. 쿵. 쾅.”



둥글이의 심장소리가 적막이 내려앉은 방 안을 채웠다. 커다란 심장 소리는 내 가슴까지 비집고 들어오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엄마 아빠, 걱정 말아요.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엄마 아빠도 힘내세요.



둥글이의 심장 소리에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덕분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내의 곁에서 역할을 다 할 수 있었다. 시간이 더 흘렀을까? 오늘인지 내일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때가 되어서야 둥글이는 우리 품에 안겼다. 대견한 어린 딸 덕분에 초보 엄마와 마음 약한 아빠는 흔들리지 않고 달리기를 마칠 수 있었다.



13시간을 견뎌 품에 안은 둥글이는 믿을 수 없게 작고, 뜨거웠다. 둥글이는 아내의 품에 안기자마자 참았던 태변을 쏟아냈다. 건강하게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 둥글이는 얼마나 노력한 걸까? 그 긴 시간을 함께 애써준 아이가 고맙고 대견했다.

출산을 마친 아내는 그간의 고통과 힘듦을 까맣게 잊은 듯 온화하고 차분했다. 방금 아이를 낳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내는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둥글이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입을 뗐다.



우리 둥글이, 너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둥글이를 처음 품에 안으면 함께 불러주기로 했던 노래였다. 아내는 작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천천히 노래를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입을 떼면 노래가 아니라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이어지는 아내의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두 여자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아내가 진통하는 동안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한 것을 얼마나 많이 후회했는지 모른다. 둘째는 갖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주의 출산은 나에게 참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날의 경험은 내 삶에 있어서 가족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날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평생을 가족과 다른 무엇을 저울질하며 힘들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둥글이가 태어나던 날 나 역시 아버지로 다시 태어났다. 그날 태어난 것은 둥글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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