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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은 사양합니다.

아빠가 쓰는 출산일기_가족을 완성시킨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by 바다별 Mar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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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조산원에서 일주일이 최고였어! 라며 회상하지만 당시 우리 부부는 좀비처럼 견디고 있었다. 둘라 선생님이 빨래와 식사를 도와주신다 해도 하루종일 둥글이를 돌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이미 한계에 닿아있었다.



“너무 힘들지 않아? 우리 좀 더 일찍 산후조리원으로 갈까?”



견디다 못한 내가 계획보다 일찍 산후조리원으로 가자고 말을 꺼냈다. 조산원에서 예정된 7일 중에서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조기 입실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산후조리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산후조리원의 안내멘트가 들리자 방학을 앞둔 초등학생 마냥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둥글이 아빠인데요. 저희 산후조리원에 이틀 먼저 들어갈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저희가 지금 확인을 해 봤는데요. 계획대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없습니다.”



결과는 조기 입실 불가.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없다니 어쩔 도리가 없다. 잠시 설랬던 마음이 훨씬 큰 실망으로 돌아왔다. 그래서일까? 산후조리원에서 보낸 나머지 2일은 훨씬 더 힘들게 느껴졌다.      


이틀 후, 약속의 날이 밝았다. 드디어 산후조리원으로 가는 날이다. 아내와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출산 후 처음 조리원을 나서는 아내는 단단히 옷을 챙겨입고 둥글이를 안아 들었다.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둥글이를 카시트에 붙들어 매고, 우리는 조금의 미련도 없이 조산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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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은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 훨씬 편하겠지? 임산부 프로그램도 많다니까 한번 해 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산후조리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우리는 여러 가지를 따져보고 꼼꼼하게 산후조리원을 골랐었다. 깨끗한 시설과 친절한 선생님, 출산 전 방문했던 산후조리원은 분명 마음에 쏙 들었었다. 하지만 아이를 안고서 들어선 산후조리원은 그 때와 달리 보였다. 하얗고 깨끗해 보이던 조명이 너무 밝게 느껴졌다. 종일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둥글이에게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생아실을 누워있는 아기들에 비해서 선생님들 수도 부족해 보였다. 산후조리원의 모든 것들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생각한 면이 없지않지만 당시 7일차 아빠였던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결정적 사건이 생겼다.



“아이가 젖 먹을 시간이 됐는데, 혹시 수유 먼저 할 수 있을까요?”



아내는 둥글이에게 2~3시간 간격으로 젖을 먹였다. 수유간격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조산원을 나서기 전에 젖을 먹였는데도 이미 수유 때가 지나 있었다. 나는 둥글이가 먹는 문제에 민감했다. 제대로 먹이지 못해 고생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후조리원 선생님들은 내말에 별로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7일차 아빠의 호들갑처럼 느껴진걸까? 산후조리원 선생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둥글이를 받아 안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는 저희가 잘 보살필테니 엄마는 이쪽으로 와서 식사하시구요. 아빠는 방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우리 세 가족은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내는 다른 산모들과 함께 식당으로 갔고, 둥글이는 다른 아기들과 함께 신생아실로 갔다. 나는 아내가 머물게 될 방에 혼자 남았다. 아내는 둥글이 걱정에 먹는둥 마는둥 급히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몇 번을 더 재촉하고서야 우리는 둥글이를 다시 만나, 젖을 먹일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엄마 아빠가 달라는데, 아이를 주지 않는 거지?”



나는 화가 나 있었다. 과연 이곳이 지난 일주일 동안 아내와 내가 해온 것 만큼 둥글이를 잘 돌봐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아빠의 무모한 생각이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내도 나와 생각이 같았다.



“위약금을 내더라도 집으로 가자. 공장 같은 신생아실에 아이를 두는 것 보다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집이 더 나을 것 같아.”



결국 우리는 입실 3시간 만에 피난민 같은 몰골로 산후조리원을 떠났다. 산후조리원 선생님들은 우리를 두고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산원과 산후조리원은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이 달랐다. 산후조리원이 산모에 집중한다면 조산원은 아이에게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산후조리원은 산모가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아이를 돌봐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조산원은 아이가 최대한 부모와 함께할 수 있도록 한다. 조명과 시설의 차이도 모두 누구에게 집중하느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항상 답답하게 느꼈던 조산원의 침침한 조명은 둥글이를 위한 것이었다. 후텁지근한 답답함도 둥글이에 맞춰진 온도와 습도 때문이었다. 물어보거나 찾지 않으면 먼저 방문을 여는 일이 없었던 조산원 선생님들은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해나가기를 응원하는 것이었다. 조산원 선생님들은 비록 자신들이 아기에 대한 전문가일지라도 둥글이에 대한 전문가는 우리 부부임을 인정하고 존중한 것이다.     


아마 조산원에서 아이와 일주일을 보내지 않았다면 나는 산후조리원의 모습을 이질적으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산후조리원은 깨끗했고, 선생님들도 친절하고 전문적이었다. 단지 우리 부부에게는 조산원의 방식이 좀 더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 부부는 무모하고 용감했던 그날의 결정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후 펼쳐진 우리의 생활이 편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출산 일주일 만에 아이와 함께 집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산후조리원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마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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