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는 출산일기_가족을 완성시킨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말 그대로 바로 육아가 시작됐다. 아내가 출산 후 필요한 처치를 받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둥글이를 보살펴야 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그것만으로도 어색함에 몸이 경직되었지만, 둥글이는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앞으로 1주일은 조산원에서 지낼 예정이라 당장 방을 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수유, 트림시키기, 기저귀 갈기, 씻기기, 재우기...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육아는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조산원에 상주하고 계신 둘라 선생님이 도움을 주셨지만, 매번 손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식사와 빨래를 제외하고, 둥글이는 온전히 초보 엄마, 아빠의 손에 맡겨졌다. 아내는 식사와 수유 때를 제외하고는 누워있어야 했기 때문에 내가 빨리 익숙해져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가 태어나고 1주일은 아내보다 내가 아이를 잘 돌보던 때였다. 울음소리만으로 배고픔과 졸음을 구분할 수 있다던 옛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둥글이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고, 이 경험은 아이와 나의 애착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자연주의 출산이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조산원에서는 아이가 먹는 양과 배변량을 기록하게 한다. 아이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표에는 아이의 건강 확인 기준이 되는 적정 수유량과 배변량이 안내되어 있는데, 갓 태어난 아이의 하루는 정말로 먹고 싸는 일의 반복이었다.
“하루에 12번 젖을 먹는데, 오줌은 8번, 똥은 3번 싼다고? 먹고 싸는 시간 빼면 잠은 언제 자는 거야??”
표를 기록하는 것은 실제로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아이가 대소변을 보는 횟수를 기록한 덕분에 우리는 큰 일을 피할 수 있었다. 모유 수유를 처음 시작했을 때 일이다. 둥글이는 몇 차례 젖을 빨고 나면 이내 잠들곤 했는데, 초보 아빠이던 나는 그저 배가 불러 잠들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 둥글이는 제대로 젖이 빨리지 않아 지쳐 잠든 것이었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동안 둥글이는 필요한 양보다 적게 먹고 있었다.
“아이가 대변을 너무 안 보는데요? 잘 먹고 있어요?”
출생 3일째, 하루 종일 대변을 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둘라 선생님 덕분에 나의 실수를 알게 되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대로 계속해서 제대로 먹이지 못했다면 영양이 부족해서 더 큰 문제로 이어졌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후로는 모유 수유 중 둥글이가 잠들더라도, 억지로 깨워서 분유를 더 먹였고 대변보는 횟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기록을 유지했다. 수유량과 배변 기록을 멈춘 것은 생후 66일이 되어서였다.
아이를 돌보는 모든 일들이 쉽지 않지만 모유 수유는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익숙해지면 분유 수유보다 훨씬 편하다고 하지만 익숙해지는 과정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를 낳은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내는 첫 수유를 했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젖을 물려보는 엄마와 태어난 지 1시간 만에 처음으로 젖을 물어보는 아이가 만났으니, 수유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둘라 선생님이 직접 아내의 몸을 받쳐가며 수유법을 알려주셨지만 잠시 배워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나는 아내가 수유하는 모습을 보고서 그냥 분유로 먹이는 것이 나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포기가 빠른 아빠였다. 엄마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초기에는 모유량도 적고, 아이도 서툴기 때문에 제대로 먹이는 것이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유 수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끈기 덕분이다. 아내는 젖을 빠는 아이의 입가에 분유를 떨어뜨려 가면서 한 시간씩 어떻게든 젖을 먹였다. 나라면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어려움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수유해도 한 번에 먹는 양이 적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젖을 먹여야 했다. 2~3시간 간격으로 수유하는데 먹이는 시간만 1~2시간이 걸렸다. 수유를 마친 아내가 쉬는 동안 나는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아이를 달랬다. 그리고 나면 다시 아내가 젖을 먹일 시간이었다. 아내는 세상 모든 엄마가 같은 기분을 느꼈을 거라며, 조산원에서 일주일을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된 것 같았어. 시간 되면 아이한테 젖 물리고, 또 조금 지나면 치료한다며 치마를 들춰보고…. 내 몸인데 무슨 공공재 같았다니까.”
3시간짜리 수유 과정을 8번 반복하면 하루가 갔다. 커튼 친 방 안에서 3시간짜리 일상을 반복하면 밤낮이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한 번은 깜빡 잠들었다가 밤낮을 확인하려 커튼 틈으로 창밖을 본 적이 있다. 햇빛이 눈 부신 눈길 사이를 바삐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침이구나.”
밤일 거로 생각했는데 출근 시간이었다. 어두운 방에는 아내와 딸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밖의 시간이 어떻건 우리의 시간은 작은 방 안에서 따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쳇바퀴를 돌고 있었다.
조산원에서 보낸 첫 일주일은 고군분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개를 헤쳐 나가고 있었다. 휴대전화 넘어 응원을 보내는 많은 사람들도 그 순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조금만 실수해도 깨지고 금 갈 듯이 약한 아이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방패가 되어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어떤 순간도 그때보다 순수하게 힘들었을 때는 없었다. 그렇게 함께 보낸 일주일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마주하더라도 함께 넘을 수 있다는 견고한 믿음의 근거가 되었다.
믿을 것은 서로 뿐이라 여기던 그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작고 여린 둥글이였다. 말아놓은 수건보다 작은 둥글이는 숨을 내쉴 때마다 온몸이 들썩였다. 쌕쌕거리며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 모든 일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눈앞의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얼굴을 수백 번이나 사진 찍으며 웃었던, 출산 때 생각이 나서 밥을 먹다 말고 엉엉 울었던 일주일이다. 우리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태어난 첫날에는 아기도 끙끙 앓으며 잔다는 것을 알았다. 졸릴 때와 배고플 때 우는 소리는 무엇이 다른지, 트림은 어떻게 시키는지, 잠은 어떻게 재우는지 모두 그 일주일 동안 배웠다. 세상 누구도 모르는 우리 아이의 비밀을 나와 아내만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