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아빠

D+2281 둘째

by 바다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두 어린이와 함께 불꺼진 침대에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해 달라며 옆구리를 파고들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성화에 시달리던 내게 상황을 빠져나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돌아가면서 친구이름 말하기 하자! 아빠 먼저 할께! 김종건!!"

갑자기 게임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벼락처럼 친구 이름을 외기 시작한다.


지수, 하윤, 하린… 귀에 익은 이름이 나온다. 딸은 평소에도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다보니 친구들 이름도 익숙하다.

윤재, 수현, 승현… 둘째도 지지않고 술술 이름을 풀어놓는다.


4~5 바퀴를 돌고 나니 오히려 내가 불안하다.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 친구만 해도 줄잡아 20명은 될테니 애초에 내게 불리한 게임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이름들을 두고서 '과연 어디까지가 친구인건가?' 라는 고민에 빠져있는데 둘째가 외쳤다.


나는 아빠!

친구 이름으로 나를 꼽은 것이다.


"엄마랑 누나!" 이어서 아내와 딸의 이름도 연달아 외친다.

첫째도 질수 없다는 듯 "아빠, 엄마, 동생"을 외치고, 나도 아이들과 아내를 외치며 게임은 끝이 났다.


친구같은 아빠는 내가 어릴때부터 동경해온 꿈이었다.

어릴때는 갖고 싶은 대상이었고,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는 되고 싶은 목표가 되었다.

아이들과 친구처럼 어울리면서 동시에 고민과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아빠는 언제나 나의 지향점이다.

아이들이 나를 친구로 꼽아줬으니 드디어 나는 친구같은 아빠가 된 것일까?




군을 그만두면서 항상 고민하는 것이 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지적할 일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한달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만날 때는 항상 좋은 이야기만 할 수 있었지만, 일상을 함께 보내면 필연적으로 잔소리가 늘어난다.


"가방은 챙겼냐."

"바르게 앉아라."

"방 정리해라."


눈에 밟히는 많은 행동들이 모두 잔소리의 대상이다.

엄한 목소리로 눈물이 뚝뚝 흐르게 혼 내는 일도 전보다 잦아진다. 그러다보면 '이렇게 싫은 소리만 하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던 아빠의 모습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곱씹어보면 "친구같은 아빠"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늘 잔소리를 달고 있고, 잘못 했을 때 누구보다 무섭게 혼내는 사람이 아빠인데 친구같다니...

마치 "새빨간 파란색" 같이 아이러니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집 아이들은 여전히 틈만 나면 "아빠 놀자." 라며 매달린다.

아침에 눈뜨자 마자 아빠를 찾고 조금만 빈틈이 보이면 뒤를 노리며 달려든다.

이런저런 잔소리도 많고 때로는 무섭기도 하지만 다행히 아이들에게는 아직 친구같은 존재인가 보다.



항상 포용하고 꾸중하지 않는다해서 아이들과 친구같은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얼마나 진심으로 보내가'라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놀 때 정말 친구가 된 것처럼 놀이에 집중하고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 아이들이 성장에 맞춰 경계를 확장해가며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아이들이 아빠와 노는 것을 즐기게 만드는 비결 아닐까.



육아에 진심인 아빠가 어느 때 보다 많은 세상이다.


아빠 육아가 아이들의 사회적 정서조절 역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이미 정설이 되었다. 더불어 많은 전문가들은 부모가 권위를 잃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육아에 대한 명확한 경계와 일관성을 갖추면서 친구처럼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빨간 파란색"이 되기위해 애쓴다.


세상 모든 아빠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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