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143 첫째
아내와 나누는 대화에서 AI가 차지하는 비율이 늘었다.
자료 정리 목적으로 노션을 많이 사용하던 아내는 이제 메이크닷컴을 이용한 자동화까지 넘보고 있다.
바야흐로 AI의 생활화인걸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내가 말했다.
“그런데 챗gpt5로 바뀌고 나서 대답이 너무 느려졌어”
프로 버전을 구독하는 나도 절절히 공감하던터라 아내의 말에 크게 맞장구치며 불만을 토로했다.
"솔직히 그렇긴해. 뭘 묻든 항상 기다려야 하는 듯~"
옆에서 듣고 있던 딸이 말했다.
“더 좋은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느라 그런 건 아닐까?”
이게 무슨;;; '뜨거운 심장을 가진 로봇'같은 쌩뚱맞은 말일까;;;
백발 노인장같은 아이의 대답 때문에 아내와 나는 졸지에 투덜이가 되고 말았다.
슬쩍 끼어든 아이의 말이 재미있어 크게 웃고 말았지만 이상하게도 뒷 맛이 오래 남았다.
사실 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배우 성동일이 아들과 대화하며 겪은 일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아들이 잘못한 것이 있어 크게 야단친 적이 있는데, 대답 없이 눈만 껌뻑이는 모습에 더 화가 난 이야기다.
답답한 마음에 아이를 다그치자 아들 성준이 말했단다.
“아빠, 나는 생각하는 거예요.”
아이는 아빠의 말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었고, 야단 맞는 것에 불만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천천히 생각하고 곱씹으며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뿐이었다.
비록 내가 보기에 답답해 보이더라도,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상대의 마음은 언제나 알 수가 없다. 내 마음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남의 속을 안다는 것은 애초에 터무니 없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내 마음 속 기준에 따라 마음대로 상대의 행동을 재단하고 평가하게 된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아이의 말대로 챗gpt도 최선의 결과를 찾으려 애쓰고 있는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요구에 걸맞는 최고의 답을 내놓으려 제딴에는 이리뛰고 저리뛰며 좌충우돌 하는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서 왜이리 늦냐며 닦달하는 나를 보고서 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곱셈 문제를 왜 빨리 못 푸냐며,
국어 문제를 왜 이해 못 하냐며,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세우는 아빠의 모습이 오버랩 되진 않았을까?
“더 좋은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느라 그런 건 아닐까?”
라는 아이의 말이 챗 gpt가 아니라 자신을 두고서 한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겠다.
챗gpt도 아이들도 모두 최선을 다하는 자신의 속도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