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간직할 수 있는 걸 줘

D+3283 첫째

by 바다별

딸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딸은 겨울을 좋아한다.

"나는 겨울이 좋아. 눈도 내리고, 크리스마스도 있고, 내 생일도 있잖아!"


아이는 야무진 이유를 가지고 1년 내내 겨울을 기다렸다.

이미 눈이 내렸고, 크리스마스도 지났으니 이제 생일만 남겨둔 셈이다.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는 질문에 '언니들이 쓰는 필통'이 갖고 싶단다.

스펀지가 들어있는 네모나고 각진 커다란 필통이 아니라,

천으로 만들어진 날렵하고 어른스러운 '언니 필통'이 갖고 싶은가보다.

너무 소박한 선물리스트에 마음이 쓰였는지 아내가 딸에게 물었다.

"다른 건 더 필요한거 없어?"


그러자, 한참을 고민하던 딸이 말을 덧붙인다.

"음~ 나는 계속 간직할만한 선물이 갖고 싶어."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대답에 잠시 말문이 막힌다.

"그럼, 아빠 얼굴을 큼직하게 붙어있는 필통 어때?!!"

아무말이나 던진 나의 농담에 기겁을 하며 날뛰는 아이를 보며

나는 내심 어떤 선물을 줄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살아오며 부모님께 받은 선물 중에서 아직까지 내가 간직하는 것이 있다.

물론 그간 받아온 수 많은 것들 중 무엇하나 빼놓을 게 있겠냐마는

내가 항상 의식하고, 챙겨두는 선물은 "어머니가 써 주신 편지"다.


어머니는 내가 큰 일을 겪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편지를 써 주셨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때때로 편지는 장문의 메세지가 대신 하기도 했지만

글에 담긴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사랑이었다.




내가 항상 간직하고 있는 두 통의 편지는 내가 군에 임관할 때와 결혼할 때 써주신 편지다.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내 사랑하고 사랑하는 아들"

첫 줄부터 마음을 울리는 두 통의 편지는 언제나 나의 다이어리 가장 뒷켠에서 자리를 지켰다.


나는 세상이 내 뜻과는 다를 때

나의 가치를 스스로 잃었을 때

다음 발자국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막막할 때마다

어머니의 편지를 꺼내, 읽고 다시 읽곤 했다.


"계속 간직할 수 있는 선물을 받고싶어."

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가며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나는 너를 믿는다는 것을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할 수 있도록.


그렇게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활짝 꽃 피울 수 있도록,

딸의 태어남을 축하하는 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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