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모든 것이 시가 된다
주말농부일기(2022년 9월 17일 -18일)
by
석담
Sep 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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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저절로 붉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ㅡ장석주의 대추 한 알 중
지난 토요일에 어머니와 대추를 털었다.
딴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대추나무의 그 큰 가시에 찔리기라도 하면 얼마나 아플지 감히 상상하기 조차 겁난다.
지난여름 아직 가을이 오려면 멀었는데 군데군데 붉은 대추가 달렸다. 하나 따서 갈라 보니 대추 안에 벌레가 한 마리씩 자리를 잡았다.
벌레가 먹으면 붉어져서 곧 떨어지고 제대로 된 대추를 수확할 수 없다. 작년에도 대추가 익기도 전에 벌레가 먹어 다 떨어지고 소위 '소출'이 전혀 없었다.
농부에게 결과물이 없는 농사만큼 허망한 것이 있으랴?
그래서 올해는 서둘러 방제를 했다.
대추 벌레 발생의 원인은 복숭아 심식나방이라는 놈이 대추나무에 알을 낳아 그것이 애벌레로 커서 대추 속으로 기어들어간 듯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밭 건너편에는 널따란 복숭아 밭이 자리하고 있다.
대추나무 두 그루 보고 농약을 사기도 그래서 감나무에 치던 살충제 찾아서 구석구석 골고루 뿌려 주었다.
그랬더니 올해 가을에는 이렇게 튼실한 대추를 맞보게 해 주었다. 역시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이 정확하다.
몇 번의 태풍과 고비를 거쳐야만 대추의 붉은 빛깔과 단맛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세상은 정말 그저 생기는 게 없고 공평한 듯싶다.
"땅콩은 방이 두 개다
엄마랑 아빠 방 하나
동생이랑 내 방 하나..."
-이상국의 땅콩 방 친구 방 중에서
나는 땅콩을 무척 좋아한다.
특히 삶은 땅콩을 하나 씩 까먹는 재미는 심심풀이 이상의 즐거움이 있다.
처음 텃밭에 땅콩을 심고 나서야 땅콩이 낙화생(落花生)으로 불리는 이유를 체득할 수 있었다.
수정한 꽃의 씨방 줄기가 땅속으로 파고들어 열매가 맺히는 독특한 땅콩의 생육 방식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땅콩은 항상 두 개의 알을 품고 있다. 간혹 한 개짜리 땅콩도 있지만 두 개가 기본이다.
그 좁은 공간에서 땅콩 두 알은 싸우지도 않고 오손도손 정답게 자란다.
우리네 삶도 땅콩처럼 사이좋게 잘 지내면 좋으련만 왜 매일 지지고 볶는지...
오늘은 땅콩에게 배운다.
"똑같은 고구마라도
불에 들어갔다 나와야
훨씬 더 향기롭고
깊은 맛이 나는 거다"
-정연복의 군고구마 중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 고랑의 고구마를 심었다.
농사를 짓다 보면 고구마 농사만큼 쉬운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손이 안 가는 게 고구마 농사이다.
작년에는 수확은 나름 괜찮았는데 고구마에 굵은 심이 박혀 있어서 제대로 된 먹거리가 아니었는데 너튜브에 찾아보니 붕소를 뿌려주면 심이 사라진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올해 고구마 모종을 심고 내가 한 유일한 일은 붕소를 조금 준 것뿐이다.
그저께 어머니와 고구마를 캐려고 시작했는데 채 10분도 되지 않아 어머니는 고구마가 너무 깊고 단단하게 박혀 팔이 아파서 캐기 어렵다며 두 손 들고 가셨다.
어제 급히 처남이랑 처남댁을 불러 긴급 도움을 요청하고 셋이서 씨름 끝에 고구마 수확을 마쳤다.
다 캐놓고 보니 족히 20킬로그램은 넘어 보였다.
한 소쿠리 쪄서 먹어보니 전혀 달지가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온도 40~50도씨 정도의 실내에서 24시간을 숙성시켜야 당도가 증가한다고 되어 있다.
작년 겨우내 농막에서 불멍 하면서 구워 먹던 군고구마의 단맛을 잊을 수 없다.
그래 고구마는 한번 불에 들어갔다 나와야 그 맛이 극대화되듯이 인간의 삶도 고난 속에서 단련된 후에야 그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오늘 고구마 같은 사나이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
"반중 조홍 감이 고와도 보이 나다.
유자가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 하나이다"
-박인로의 조홍시가(早紅枾歌)
감은 서리를 맞고 나서 따야 한다는데 벌써 몇 개의 감은 붉어져서 홍시가 되었다.
마누라는 홍시 킬러다. 단숨에 두 개는 물론, 하루에 다섯 개씩도 해치운다.
작년에 감농사가 쫄딱 망한 덕택에 올해는 5월부터 매달 감나무 방제를 했다. 그랬더니 올해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감들이 수없이 달려있다.
이제 저 많은 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에 쌓였다.
홍시도 만들고, 곶감도 만들고, 감말랭이도 깎고, 감식초도 만들고...
부모님 두 분이 곁에 계셔서 조홍시가를 읊어도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지만 홍시를 드릴 부모님이 안 계실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니 갑자기 먹먹해진다.
이제 홍시를 먹으면 부모님 생각이 날까 홍시 먹기가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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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도시 농부의 4도 3촌기
01
가을에는 모든 것이 시가 된다
02
배추가 익을 무렵
03
농막의 겨울풍경
04
봄은 다시 농부를 찾아왔습니다
05
꽃 피는 봄이 오면
도시 농부의 4도 3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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