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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Nov 11. 2023

아내와의 심야 응급실 데이트

퇴근 후 저녁을 먹을  무렵 아내는 일상적인 저녁 운동을 위해 산에 갔다.

나는 저녁 뉴스를 보고 나서 샤워를 마친 후 어머니가 볶아 주신 구기자 차를 끓여 한잔 마신 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작 걸렸다.


내일은 토요일이지만 밀린 납기 때문에 직원들이 대부분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모두들 주 5일제는 물 건너갔다며 불평이지만 그걸로 끝이다. 내일 아침이면 모두들 군말 없이 출근할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노동 여건은 더 나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일 저녁에는 부산에서 불교학생회 OB동기들 모임이 예정돼 있다. 분기별로 한 번씩 하는 모임이라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모이는  시간이 저녁 6시라 오후 2시쯤에 회사에 핑계를 대고 빠져나갈 요량이다.

모임은 1박 2일이라 간단한 옷이며 세면도구 등을 챙겨 가방에 넣어두고 슬슬 취침할 준비를 했다.


아내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등산에서 돌아왔다.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아내는 해피를 목욕시키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해피의 항문낭*을 짜 달라는 아내의 고함소리를 듣고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해피의 엉덩이를 더듬어 항문낭을 짰다.  우리 집에서  항문낭을 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뿐이다. 딸들이나 아내는  해피 목욕시간에 항상 나를 필요로 한다. 내가 반려견 항문낭 해결사이기 때문이다.

목욕이 끝난 해피가 침대  위에 올라와 심하게 몸을 털며 한바탕 난리를 치고 드러눕는다.

그 무렵 아내의 낯빛이 예사롭지 않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배를 부여잡고 너무 아프다고 했다.

내 머릿속에는 수 만 가지 생각이 순식간에 교차했다.

"복통이면 소화 불량인가?"

"맹장염 수술은 몇 년 전에 했었지."

"지금 응급실로 갈까?"

"마누라가 많이 아프면 내일 모임에는 못 간다고 연락해야 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동시에 냉장고에 있는 부채가 그려진 소화제를  찾아 아내에게  마셔보라며 주었다.

아내는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 좀 나은 것 같다는 알쏭달쏭한 답변을 했다.

나는 아내에게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저녁은 먹지 않고 단감을 세 개나 먹었다 했다. 아내가 단감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한 번에 세 개나 먹었다니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단감이 원인일 거라는 돌파리 진단을 했다.


인터넷 검색 결과에 나는 무릎을 쳤다. 공복에 감을 많이 먹으면 감의 펙틴과 타닌 성분이 위산과 결합하여 소화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검색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위석**'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담석도 결석도 아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위석'이라는 용어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감을 즐겨 먹으면 위장에 돌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내가 열심히 스마트 폰을 검색하는 중에도 아내는 계속 간헐적인 통증을 호소하며 매실진액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를 한참 뒤진 끝에 매실청이 담긴 병을 찾긴 했는데 도무지 열릴 기세가 아니었다. 한참을 씨름하다 빨간 고무장갑을 낀 후에야 뚜껑을 열 수 있었다.  아내는 두 어번에 걸쳐 나누어 마시더니 '꺼억'하고 트럼을 했다. 트럼이 그렇게 반가운 소리로 들렸던 기억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것도 잠시 아내는 작은 방 침대 위에 엎드려 또 고통을 호소했다.

작은 방에서 두어 번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내가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변기에 엎드려 토하기 시작했다. 몇 번을 소리 내어 게워내었지만 내용물은 별로 없었다.

나는 문을 닫으려는 아내를 밀쳐내고 들어가서 아내의 등을 두드렸다. 제발 뱃속의 것들이 모두 다시 입 밖으로 나오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등이 아프도록 두드렸다.


이제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빨리 옷을 입으라고 재촉했다.

는 서둘러  근처의 응급실이 있는 종합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12시가 넘은 시간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늦은 음주를 마치고 귀가하는 취객들만 가끔 마주칠 뿐이었다.


응급실 병상위에 누운 아내는 두 개의 수액을 달고 엑스레이 검사에 소변검사, 피검사까지 마치고 편안하게 누워 있다.

옆 병상에는 여든일곱의 노인이 병마와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그래서 응급실의 풍경은 항상 애잔하다.

이미 시각은 새벽 2시를 지나 있었다.


아내는 내게 말했다.

"이제 안 아파요."

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응급실 의사에게 CT는 다음에 또 아프면 입원해서 찍겠노라 이야기하고  서둘러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지옥에서 탈출한 것처럼 두런두런 무용담을 풀어놓았다.

내 머릿속에는 문득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가 내내 맴돌았다.


*  항문낭 : 항문낭은 개들의 항문 양옆에 냄새나는 액체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말한다. 예전에 자기 영역을 표시하거나 배변을 도와주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현재는 그 기능을 쓰지 않아 퇴화되었다고 한다. 정상적으로는 대변을 볼 때 함께 배출이 된다. 그러나 운동부족 등의 이유로 액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염증이 생기거나, 심할 경우에는 항문낭이 터져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항상 항문낭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 위석 : 위석은 몸 안에 생긴 ‘돌멩이’다. 특정 음식이나 무심코 삼킨 이물질(異物質)이 위(胃) 내에서 지속적으로 굳어진 결과가 위석이다. 대개는 위 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우연히 발견된다.

위석의 원인으로 흔히 감이 거론된다. 감의 떫은맛 성분인 타닌이 위의 위산(胃酸)과 섞이면 아교 같은 물질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식물의 씨나 식이섬유 같은 것들이 달라붙어 덩어리를 형성하게 된다. 이 덩어리가 바로 위석이다. 위석은 서로 잘 엉겨 붙는 성질을 지닌 타닌ㆍ위산ㆍ식이섬유가 위(胃)에서 단단하게 굳어진 상태다. 타닌과 식이섬유 함량이 다른 과일보다 월등 높은 감은 대표적인 위석 유발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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