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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Jan 02. 2024

노인을 위한 변명

때는 바야흐로 2024년   아침이 밝았다.

끊임없이 이어진 시간의 연장선상에 있는 세월을 열두 달씩 모아 일 년이라는 기간으로 구분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한 해의 마지막과 또 다른 한 해의 시작에 사람들은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아마도 새롭게 마음을 다잡으라는, 또는 새 출발을 해보라는 특별한 시작의  의미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불혹(不惑)이 지나면서 한 살 더 먹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이제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만 나이를 쓴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코웃음이 나왔다.  나이가 두 살이나 젊어진다고 내 몸이 2년 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2023년의 마지막날 가족들과 함께 부산  해운대를 찾았다.

연말연시를 부산에서 보내는 것이 올해로 세 번째이다.

작년에는 광안리에서 보냈고 2019년에도 해운대에서 새해를 맞았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혹여 해가 뜨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아내와 같이 붉게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며 기도를 했다.

가족들과 함께한 새해  아침은 항상 옳은 선택이었다.


스페인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의 개성 있는 연기가 와닿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에서 노인이 등장하지 않아 의아했었다.

해가 바뀌고 내 나이의 앞자리 숫자도 6으로 탈바꿈했다.

이제 노인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고 어르신이라는 호칭과 아버님으로 불리는 횟수도 잦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늙는다는 것이 항상 우울하지만은 않다.

세상을 보는 넓은 시야와 시간을 보내는 지혜를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설렘이나 긴장감은 예전 같지 못하지만 당황함이나 놀람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젊은이의 패기와 중년의 강인함은 없어도 세상을 살아가는 연륜은 아직 남아 있다.


자고 일어나면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다.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이 한 움큼이지만

그래도 아직 견딜만하다.

화장실 가는 횟수가 회장실 불려 가는 횟수만큼 잦다.

그래도 아직 내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출근해야 할 유보된 5년의 세월이 있다.


나는 386세대로 486을 거쳐 586이 되었다.

뉴스에서는 잘 나가는  젊은 정치인이 연일 늙은이는 떠나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래도 나는 시치미 떼고 꼼짝도 안 한다.

기성세대도 괜찮다. 라떼면 어떠랴?

우리도 한때는 잘 나가는 그 시절이 있었다.

해운대 미포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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