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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Dec 19. 2023

나는 산악인  마누라하고 살아요

아내가 대학시절 산악반에서 6개월 정도 활동했다는 이야기는 결혼할 무렵 귓등으로 들었다.

그녀의 등산 본능이 살아 난 건 딸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그동안은 집 건사하랴, 애들 챙기랴 자기만의 취미에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었으리라.

그렇다고 그전에 등산을 다니지 않은 건 아니다.

불혹에 접어들면서 낚시라는 취미를 접고 아내와 같이 등산을 다닐 때만 해도 아내가 등산에 그렇게 진심일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아내와 주말에 가는 산행은 처음에는 집에서 간단히 배낭하나 달랑 매고 걸어서 한두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집 앞의 앞산이 그 시작이었다.

매주 같은 등산로와 루틴으로 다녀오는 앞산 산행이 지겨워질 때쯤 아내는 산행 코스를 전혀 새로운 길로 변경했다. 그 길에 싫증을 느낄 때쯤 또 새로운 등산로를 찾아 떠나기를 반복했다.

앞산은 눈감고도 가겠다는 허언을 해댈 때쯤 아내와 나는 비슬산으로 가야산으로 차를 타고 산행을 떠났다.

그리고 하루에 걷는 거리만 10km가 넘은 종주산행도 가끔씩 곁들여 떠났다.

오래전에 비슬산 자연 휴양림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출발해 우리 집이 있는 앞산까지 종주 산행을 한 적이 있었다. 10km가 넘는 거리로 오후 5시쯤 우리 부부는 앞산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아내는 주말에 가는 산행 말고도 혼자서 떠나는 산행이 일 년에 두어 번씩 있었다.

직장 등산 동호회 회원들과 합류하여 설악산이나 지리산, 그리고 한라산 산행을 다녀왔다.

그러한 산행들은 주로 무박 종주로 이루어졌는데 토요일 밤 10시쯤 나는 아내를 톨게이트 근처의 픽업 장소로 데려다주고는 했다. 밤새 차를 달려 새벽녘에 도착한 산행 지점에서 10시간 이상의 종주 산행을 하는 것이다. 일요일 저녁 늦게 귀가한 아내는 설악산의 비경과 공룡능선의 아름다움을 무용담 같이 풀어놓았다.

나의 산행도 아내와 더불어 업그레이드되었다. 아내가 속한 산악회의 정기 산행에 같이 따라가고 혼자서 청도의 남산을 가끔 오르다 보니 더 높은 산에 대한 욕심이 났다.

그래서 마침내 지난겨울 대학 후배와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아내의 등산이 내게 선한 영향력을 미친 것이다.

딸들이 모두 집을 떠나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아내의 산행은 그 절정을 맞았다.

주말 산행은 물론, 평일 산행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퇴근 후 매일 밤  앞산 전망대까지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저녁 7시쯤 집에서 출발해서 10시쯤 돌아오는 코스였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떠나는 산행이었다. 지금은 아내의 직장 동료들과 매일 같이 한다니 아내는 등산 전도사라도 된 듯하다.


아내는 몇 달 전부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국내의 B 등산용품업체에서 명산 100 도전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아내도 도전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오면서 매주 산 정상을 오르고 사진을 찍어 인증을 하는 것이다.

처음 강원도에서 시작한 아내의 도전은 지금은 문경까지 내려온 듯했다.

아내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작은 체구의 아내의 건강과 무릎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나의 그러한 우려도 아내의 도전을 꺾기에는 역부족이다.

부디 건강한 몸으로 성공적인 도전을 해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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