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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Nov 28. 2023

나의 뿌리를 찾아서

큰아버지는 생전에 족보 찾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명절날 아침 차례가 끝나면 두껍고 묵직한 대동보를 손수 가져오셔서 나를 포함한 사촌  형제들을 불러 모으셨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집안의 뿌리와 우리 집안의 내력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해 내기는 어렵지만 13권의 대동보에서 중시조분들의 계보가 적힌 족보책에서 우리 집안의 시작을 알아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족보 책으로 그 연결고리를 이어가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내 이름까지 적힌 우리네 계보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어렵고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큰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찾아가서 우리 집안의 뿌리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강산이 세 번 바뀌고 나서 집안의 큰 어른이시던 큰아버지가 별세하셨다.

그 후로 나와 우리 사촌형제들의 기억 속에는 족보에 대한 추억이 시나브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두 질의 대동보 전집은  장손인 사촌형집의 농안에  한 질,  그리고 큰아버지댁 문갑 안에 또 다른 한 질이 고이 모셔져 있을 따름이었다.

우리 사촌형제들 중에 누구도 그 감추어진 족보책을 끄집어낼 용기를 내지 않았다.


얼마 전에 회사 사장님의 족보책을 정리해 주는 작업을 대신해 준 적이 있었다.

시키니까 마지못해 하기는 했지만 우리 집 족보도 아닌 남의 족보를 정리하면서 자괴심이 들었다.

그리고 부끄럽기도 했다.

남의 족보는 그렇게 열심히 정리하면서 우리 집안 족보는 나 팽개쳐두고 있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몇 년 전 집안의  다른 일가 종친회에 잘못 참석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떠 올랐다.

자신의 뿌리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해댔다.


https://brunch.co.kr/@f371548eede94c0/66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큰아버지가 가르쳐주신 족보 찾기의 기억을 더듬어 다시 우리 집안의 뿌리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사촌형집이나 큰아버지댁의 족보를 들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다른 방향으로 구해 보려는 노력을 했다.

그렇지만 종친회사무실에도 대동보편찬위원회에도 남은 족보책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다행히도 두 곳의 중고샵에서 새 책 수준의 대동보를 팔고 있었다. 전집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일단 우리 집안 계보가 나오는 두 권의 대동보만 주문했다.


지난 일요일 저녁에 주문했는데 아직 배송 중이라는 내역이 떴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배달 준비 중이라고 업데이트되었다.

아마도 오늘 저녁에는 대동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의 뿌리를 찾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여담: 족보 찾기에 몰두하다 보니 요즘 잘 나가는 축구 스타 김민재 선수가 같은 일가임을 알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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