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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Dec 22. 2024

아름다운 노년은 정녕 이상인가?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 노천명(盧天命)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 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짓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 하겠오



아내는 노천명의 이 시를 좋아한다.

노년에는 저렇게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다.

언젠가 티브이 대담 프로그램에서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10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항상 얼굴에는 미소를 잃지 않고 여유 있는 모습에 나도 저런 노인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나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노후를 생각하며 청도에 자그마한 밭도 마련하고 농막도 짓고 빈티지 냄새 풀풀 나는 전축도 마련했다.

그리고 부산에 사시던 부모님도 그리 사시길 원해 청도에 정착하도록 도와 드렸다.

그렇게 차곡차곡 준비해 가던 이상적인 노년의 구상은 올해 8월 아버지가 집에서 고관절을 다치는 바람에 큰 난관에 부딪혔다.

본가 텃밭의 난간에서 추락하신 아버지의 입원으로 나는 나의 준비 없음과 부모님을 세세하게 살펴 드리지 못한 과오를 스스로 자책했다.

사후 약방문 격으로 아버지가 입원하시고 나서 부랴부랴 인부를 불러 난간 공사를 했다.


아버지는 지난주에 다행스럽게도 퇴원하셨고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 다행히 보행은 가능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신 동안 치매 증세가 발현했다.

나는 아버지가 입원하고 계신 동안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해 두었고 다음 주에는 그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요양등급을 받으면 주간 보호센터라도 보내 드리고 어머니의 수고로움을 덜어 드려야 한다.


팔순의 부모님을 뵙고 오면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짠한 마음과 힘든 노년이 생각나 힘들어진다.

부모님을 보면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젊어서는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이제 좀 쉴만하다고 생각했는 데 노년에도 이렇게 힘든 삶을 이어가시는 게 너무 안타깝다.


나와는 반대로 시골 생활을 즐기지 않는다.

노년에는 병원 가까운 도시에서, 그것도 지하철 가까운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노년에는 아내와 주말 부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며칠 전  아내가 나에게 내년에 환갑이라고 이야기하는 걸 듣고 화들짝 놀랐다.

그렇다.

나도 벌써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머리에는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이 생기고 피부는 탄력을 잃어가고 몸은 여기저기 이상신호를 보낸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늙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그것에서부터 노년에 대한 준비는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부모님의 힘든 노후를 거울삼아 나는 더 나은 노인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금 노인 문제는 비단 우리 집이나 나의 문제 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노인으로 살아갈지는 오롯이 나의 선택과 노력에 달렸다.

이제부터 하나씩 어떤 노인으로 살아갈지 고민해 보고 하나씩 준비해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생각이 확고해지고 방향이 정해지면 이상적인 노후를 보내고 아름다운 노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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