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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Nov 21. 2024

우리는 쇼윈도지만 여전히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그랬다.

나의 선택이 옳았었다.

그때 악착같이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나는 아내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하고 끝내 나의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작년 9월에 나는 브런치에 뜬금없이 '나도 새 차를 타고 싶다'라는 글을 올렸었다.

https://brunch.co.kr/@f371548eede94c0/263

그리고 나는 그것이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라고 했었다.

그것은 그냥 지껄여 본 허언이 아니었고 나의 진심을 담은 열망이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나의 그런 열망이 현실로 이루어질 기회가 실제로 찾아왔다.

올해 10월 15일 세계적으로 안전한 차로 이름이  난 스웨덴의 자동차 회사인 V사에서 창립 97주년을 맞아 97대의 한정판 블랙에디션 준중형 SUV를 선착순 판매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스마트폰에 15일 10시에 알람을 세팅하고 그날을 학수고대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나는 빛의 속도로 97대의 한정판 자동차 중의 한대를 예약하는 데 성공했다. 계약금 100만 원도 기꺼이 송금했다. 그 선착순 자동차 온라인 판매가 7분 만에 마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승자처럼 뿌듯했다.


나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해 저녁 시간을 비워두라고 했다.

아내는 시큰둥하게 반응하면서도 무슨 일인가 해서 궁금해했다.

나는 퇴근 후 아내와 함께 V사의 자동차 대리점에 들러

그곳에 전시된 이번에 내가 어렵사리 구매한 자동차와 같은 모델을 구경하고 레스토랑으로 아내를 데려가 함박스테이크를 사주었다.

그리고 나는 여차저차해서 이 차에 당첨이 되었고 이제 돈만 보내면 다음 주에 새 차를 받을 수 있다고 정성을 다해 설득했다.


나의 그런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자동차 대리점 딜러는 빨리 잔금을 결제하라고 나를 압박했다.

나는 은행에 연락해서 얼마간의 신용대출이라도 받아 보려고 시도했고 그렇게 하면 잔금 문제는 해결이 가능했다.

퇴직금을 받아서 원금을 상환하기로 마음먹고 아내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이제 사는 차는 어차피 나의 마지막 차이다. 내게 더  이상의 새 차는 없다."

그렇게 나는 최선을 다해 간절히 아내를 설득했다.


아내에게서  온 톡을 보고 나는 모든 마음을 접었다.

"와이카노? 못살겠다."

나는 27년을 같이 산 아내가 내 사람 같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남들이 보기에만 부부였구나 하는 자괴심이 들었다. 그냥 쇼윈도 부부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의 자존감은 한없이 무너져 갔다.

그렇게 시간은 약이 되었고 나는 털털거리는 25만 킬로를 넘게 달린 2010년씩 SUV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나는 한참 후에야 아내에게 내가 썼던 브런치  "나도 새 차를 타고 싶다"를 보냈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브런치를 쓴 지 1년이 넘게 흘렀고 내가 V사의 자동차 한정판매를 포기한 지 한 달이 넘은 오늘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나니 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불안한 마음에 차 하부를 보니 기름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급하게 단골 카센터에 연락했더니 차를 갖고 오란다.

카센터 사장이 보닛을 열어 보니 엔진 배선에서 오일이 스프레이처럼 뿜어져 나왔다.

배관이 삭아서 그렇단다.

늦어서 다음날은 되어야 수리 가능하다기에 맡겨두고 택시를 탔다.

집으로 오는 내내 착잡한 마음이었다.


저녁을 먹고  빈둥거리고 있는데 아내가 왔다.

내일 아내 차를 빌려 달랬더니 방에 차키를 놓고 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새 차를 한대 사야겠네요."

나는 마른입에 침을 억지로 삼키고 힘을 주어 했다.

"차는 무슨 차, 나는 차 안 산다."

그렇게 나는 뒤끝 있는 남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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