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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Nov 18. 2023

ㅂ-부모

부모의 역할, 그거 어떻게 하는 건가요.

부모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임신 혹은 아이의 탄생과 동시에 부부는 부모가 된다. 각자의 삶을 더해 부부가 되었고, 거기에 아이의 삶이 더해져 부모가 된 것이다. 결혼 준비를 할 때, 어디를 가든 신랑님과 신부님으로 불리는 게 참 어색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의 엄마, 아이의 아빠로 불리는 순간이 많아졌다. 내가 엄마라니, 남편이 아빠라니. 호칭의 변화는 어색하면서도 설레는 느낌이 든다.


호칭이 달라지면서 엄마와 아빠로 불리게 되었지만, 부모의 역할은 저절로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하기 전에 아이 수유, 목욕 등 기본적인 양육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책도 읽고 영상도 찾아보며 부모의 역할을 배워나갔다. 그러나 현실 육아는 만만치 않았다. 먹이는 것도 재우는 것도 씻기는 것도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말 못 하는 아이는 울기만 하고, 말할 줄 아는 부모도 어쩔 줄 모르고 울기만 했다. 스무고개 맞추듯 요리조리 답을 찾아가며 아이의 울음과 요구를 알아갔다. 답을 찾았다 싶으면 아니었고, 이제 알겠다 싶으면 다시 새로운 상황이 찾아왔다. 그렇게 부모의 역할은 어렵게만 느껴졌다.


검색창에 ‘부모의 역할’을 입력하면 부모가 되는 게 무서울 정도로 수많은 결과를 보여준다. 

부모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 이렇게 하는 부모는 나쁜 부모다, 부모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등 하나라도 놓치면 큰일이 날 것 같다. 그런 공포와 부담을 느끼면 느낄수록 육아는 어렵게 느껴졌고 부모가 되는 건 버겁게 느껴졌다. 잘할 수 있을까, 실수하면 어쩌나, 내가 이 아이의 인생을 망치게 되는 건 아닐까 등 고민만 깊어졌다. 고민의 끝은 ‘나 하나도 제대로 못 챙기는 내가 이 아이의 부모가 된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고 부모가 된 것 자체를 후회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지곤 했다.


부모가 되었을 뿐인데, 달라진 게 너무나도 많았다. 

눈을 뜨는 것도, 씻는 것도, 먹는 것도, 쉬는 것까지도 어느 하나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꼈다. 거기에 부모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책임감이 더해지니 아이가 주는 행복과 사랑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지금도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후회가 밀려온다. 이렇게 작고 소중하고 예쁜 시기를 왜 그리 눈물과 고통으로 채웠을까. 아이에게는 부모의 역할을 “잘”하는 부모가 아니라 “부모”가 곁에 있다는 그 자체로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부모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의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변화시키기 위한 모든 종류의 교육적 기술이나 작용을 일컫는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에는 ‘부모는 자식의 몸만 낳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낳으며, 부모는 자식의 몸만 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기른다.’는 문장이 있다. 몸과 마음을 낳아주고 길러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자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0-1세에는 보호자, 1-3세에는 양육자, 4-7세에는 훈육자, 7-12세에는 격려자, 12-20세에는 상담자, 20-40세에는 동반자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훈육자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에 와 있다.


보호자와 양육자를 지나 훈육자 역할. 고개가 끄덕여진다. 

요즘 나의 일상은 아이에게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알려주는 게 대부분이다. 예의와 도덕, 올바른 가치 등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먹이는 것과 재우는 것에 연연하며 발만 동동 구를 때보다는 육아도 한결 쉬워진 느낌도 든다. 물론 먼저 이 길을 지난 부모 선배들의 말처럼 어릴 때는 몸이 힘들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머리와 마음이 힘들다는 말도 공감이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 부모님들은 어떻게 이런 과정을 다 지나오셨을까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밀려온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부모로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으심이 감사하고도 죄송스럽다.


아이가 옹알이를 시작하고,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던 그때. 

우리를 보며 엄마,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한 그때가 생각난다. 다른 사람의 입으로 누구의 엄마, 아빠로 불리던 것과 달랐다.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던 그 순간, 정말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제발 그만 불러!라고 말할 정도로 수시로 불리는 그 이름, 엄마다. 나는 엄마가 되면, 즉 임신하거나 출산을 하고 나면 저절로 모성애도 생길 줄 알았다. 그런데 온통 낯설고 어색하고 어려운 육아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에게는 모성애라는 게 없는 줄 알았다. 늘 어렵고 불편하고 답답하고 힘들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고, 아이가 주는 편안함, 안정감, 행복함과 사랑은 보이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런 과정도 모두 부모가 되는 시간이었나 보다.



여전히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인지 모르겠고, 부모의 역할을 잘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단 하나, 부모로 살아가는 삶과 부모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 이 모든 게 나의 삶이다. 그러니 부모님의 삶과 나의 유년 시절을 돌아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해 본다. 어쨌거나 부모가 되었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삶이니 이왕이면 “잘”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즐겨보자고. 


그저 곁에서 같이 웃고 안아주고 사랑하며 사는 것. 

그거 하나면 충분한 부모의 역할이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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