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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Jul 19. 2024

끊어내야 쉬어지는 숨

14

 출산을 빌미로 엄마와의 백일 간 동거는 물론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솔직히 무척 고됐다. 몹시 진이 빠졌고, 나는 엄마에게서 예상치 못했던 깊은 마음의 상처를 또 한 번 받았다. 같이 붙어있는 기간이 그렇게 길어질 줄도 몰랐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이토록 넘어설 줄도 몰랐다. 나는 출산 이후 예민지수가 거의 최고를 찍었다. 아이를 두 명 낳아 길러보니 알게 됐지만, 오직 첫째 아이 키울 때만 발동하는 '처음'이란 기제는 860억 개가 넘는다는 신경들이 24시간 내내 곤두서게 하는 것과 같았다. 거기에 더해 엄마와 남편 그리고 산후도우미 세 사람 간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들 사이에서 언제나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있어야 했다. 나는 거의 웃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엄마가 안 웃어서 아기도 안 백일동안 첫째 아이가 웃는 걸 본 적이 드물었다. 두 번째 산후도우미와의 소동에서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같은 말이어도 '아'와 '어'는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리 좋게 '아'라고 말했어도, 듣는 사람이 어떤 태도와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좋은 '아'도 다르게 들릴 수 있다고. 엄마와 산후도우미는 서로 이야기가 달랐고, 입장이 달랐다. 지난 상황들을 보고 들으며 가운데 껴있던 내 입장과 생각도 달랐다. 우리는 왜 항상 같은 상황에서 같은 것을 보고 들어도 모두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느낄까. 엄마와 아빠의 갈등도, 나와 남편 사이의 갈등도 모두 다 마찬가지겠지. 내가 내 입장과 생각이 있듯이 남편도 남편의 이야기가 있겠지 싶었다.



 어느 날, 내 입에서 나왔든 무슨 말이 그렇게 엄마의 심기를 건드렸을까. 잘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엄마의 오열하는 울음소리와 이내 화가 뻗친 욕이 남발하는 고함소리, 몹시도 혼자 있고 싶었던 나, 방 문을 닫고 침대에 앉아서 펑펑 울던 내 모습, 그러면서도 아이방에서 자고 있던 첫째가 혹시 할머니 소리에 놀랄까 봐 노심초사 걱정하던 마음, 굳게 잠긴 내 방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무자비하게 두드리던 무서운 문 소리. 그리고 시간이 고장 난 것처럼 좀처럼 흘러가지 않았던 긴 침묵의 시간. 어떻게 엄마란 사람이 출산해서 힘들게 몸조리하고 있는 딸에게 저럴 수 있을까, 어떻게 엄마가 출산한 딸을 도와주러 와놓고 본인 힘든 것만 생각할까. 왜 애까지 낳고 키우는 다 큰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그런 것들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또 하나의 상처가 됐다. 아마 엄마가 무슨 상관이냐는 류의 말이었을 텐데 엄마는 나에게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싸가지 없는 년! 어디 감히 엄마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내가 너한테 그 딴 소리를 들어야 하니?! 이런 썅년!!!"

도대체 내가 얼마큼 싸가지 없게 말했기에 그 정도로 화가 났었을까. 난 그래도 제법 상식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인인데, 오죽하면 10대부터 수련까지 하며 살고 있는데. 엄마는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던 걸까. 갱년기가 저렇게 무서운 건가. 잘 모르겠다, 나는 기억을 잘 지운다. '미안, 엄마.'



 엄마가 밤에 와인 한 병을 혼자서 다 마셨다. 그리고 피로에 가득 지친 내 남편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며 오열과 고함이 교차되는 또 한 번의 큰 소동이 있고서야 엄마가 육지로 돌아갔다. 앞으로 다시는 도와달란 말 하지 말란 말과 이제는 절대로 제주도에 내려오지 않겠단 호언장담과 함께. 그 뒤에 한 동안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고 살았다. 몇 달에 한두 번 전화나 문자 할 만큼 뜸했던 연락이 더 뜸해졌다. 아빠와도 몇 년간이나 연락을 끊고 살았었는데 이쯤이야 쉬웠다.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가족과의 단절. 오히려 끊어내야 숨 쉬어지는 내 삶. '가족'은 그렇게 언제나 내 심장을 몹시도 아리게 만드는 단어였다. 그런 내가 가족을 꾸려 살게 되다니, 단연코 쉬울 리가 없었다.



 그래서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서는 엄마의 도움은 일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내가 산후도우미 운이 없는 건가, 아니면 우리 동네가 시골이라 문제인 건가. 첫째 아이 때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역시 산후도우미는 날 쉬게 해주지 않았다. 난 그저 조용히 누워서 쉬고 싶은데. '금쪽같은 내 새끼' 애청자셨던 산후도우미는 방송을 통해 접한 온갖 이야기를 나에게 퍼부으셨다. 과한 반응, 과한 칭찬, 모든 과함으로 첫째 아이를 상대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첫째 아이가 그저 물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도, "우와~~~~ 너무 잘했어, 물도 잘 마시고, 너무 예쁘다~ 진짜 최고다~~" 

육지에 있는 친구들을 통해 들은 산후도우미들은 알아서 척척척 반찬도 끼니마다 다르게 해 주시고, 아이가 있으면 간식까지 만들어 주신다는데. 산후도우미는 그야말로 천사와 같은 존재라던데. 진짜 너무너무 좋으니까 꼭 쓰라고. 그런데 나는 밥 한번 얻어먹기가 왜 이렇게 힘들까. 내가 일일이 말하지 않으면 도통 밥을 안 차려 주셨다. 아이 돌보는 일와 집안일 모두 내가 다 해야 했다. 

"저.. 밥은 안 차려 주세요?"

"아.. 밥 해달라 얘길 해줘야지. 쌀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밥을 안 했죠."

정해진 시간이 되면 곧장 퇴근해 버리시는 산후도우미는 3일이나 우리 집에서 8시간씩 꼬박 계시다 가셨다. 



 둘째 출산 이후 몸은 좀 어떠냐며 안부 전화를 걸어온 동생과 통화를 하게 되자 저절로 하소연이 쏟아졌다. 

"전화번호 줘. 내가 전화해 줄게, 업체에."

"혼자 끙끙 만 해. 누나 엄청 소심해졌다. 나 왜 이렇게 싫은 소리 못하냐. 애 낳고서는 싫은 소리 일절 못하겠어, 이제."

"그러니까, 번호 달라고. 밥도 해달래서 간신히 얻어먹는 게 말이 되냐고."

"어제 나 너무 힘들었던 건, 쉬지도 못하고 놀이방에 장난감을 몇 시간 동안 낑낑대면서 치워놨거든? 그런데 애랑 놀아준다고 30분인가 놀이방에 계셨는데 초토화시켜 놓고 그냥 가셨어, 정리도 안 하고. 남편이랑 첫째 아이 종종 있는 것 때문에 추가 비용까지 냈는데..."

"여보세요, 몇 번째 말하니. 번호 좀 줘."

"있지, 손이 느리신 거겠지? 분명 경력이 많으시다 했는데.. 보통 냉장고에 재료 사다 놓으면 알아서 꺼내서 요리해 주신다며? 어제는 냉장고에서 재료 다 꺼내드리고 만들어달라 메뉴까지 감자채볶음, 계란말이, 가지무침 이 정도 해달라고 일일이 얘기해서 겨우 얻어먹었거든. 그런데 나도 그 정도는 한 시간이면 뚝딱 만드는데 오전 내내 서너 시간 요리하시다가 끝나."

"그니까, 전화번호 좀."

"야, 남편도 가만히 있는데 동생이? 남편은 그냥 취소하고 그 돈으로 소고기나 사 먹재."

"아휴 답답해, 매형도 말 못 하시잖아. 내가 컴플레인해 준다고, 사람 제대로 바꿔서 보내달라고 얘기해 줄게. 얼른 전화번호 좀 줘봐. 번호 달라는 소리 열 번째다."

"야 무섭다 무서워. 그냥 내가 할게, 됐어."

"화 안내. 그냥 컴플레인만 거는 거야."


싫은 소리 못하게 변해버린 나 대신, 나보다 더 싫은 소리 하기 싫어하는 남편 대신, 육지에 있는 내 동생이 남편인척 원장에게 전화를 해줬다. 그렇게 해서 바뀐 산후도우미는 전문가의 기운을 뿜어내시며 이미 깨끗하게 소독된 스텐 좌욕기를 들고 출근을 하셨다. 사인을 해야 하는 종이마저 파일철에 가지런히 꼽아 오신 모습에 마침내 내 숨통이 트였다. 동생이 이런 마법을 부려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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