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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모아 Aug 26. 2024

[6화] 진영 이야기 - 듀끌로 씨의 죽음

<연재소설> 비밀의 부부

“제가 발견했는데 화장실 천장 조명 걸이에 목을 맨 것 같아요. 바닥에 고꾸라져있던 시신 주변으로 망가진 조명 걸쇠와 줄넘기가 있었거든요. 세면대랑 바닥에 핏자국도 많았고...”


나의 시선이 커다란 가방을 실은 들것과 함께 앰뷸런스에 올랐다.


마담 레스프리는 다리가 풀렸는지 현관 앞 계단에 풀썩 주저앉았다.


감색 제복을 입은 경찰이 다가왔다. 경찰은 듀끌로 씨의 이웃이었던 나에게 그에 대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답하려니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시신의 상태로 봐서는 일주일쯤 된 것 같은데, 혹시 그즈음 이상한 점 없었나요?”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일주일 전이면 그와 차를 마시려다 내가 도망쳐버린 날일 것이다.


그날 밤 위층에서 알몸으로 걸어 다니고 있을 듀끌로 씨를 상상하며 수면제를 먹고 자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앞 동 젊은이들의 파티 소리와 위층에서 들렸던 난폭한 소음도.


밤새 심장이 두근거려서 자는 걸 포기하고 뜨거운 차를 마셨었는데... 따듯한 찻잔 위로, 그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던 건가? 그날 밤 다투던 소리가 나의 망상이길 바랐는데.


충격에 휩싸여 있는 동안에도 그가 옷을 입고 있었을까 안 입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언제 왔는지 남편이 입을 열었다.


“일주일 전 자정 너머 듀끌로 씨가 나체로 복도를 돌아다니는 걸 봤습니다.”


남편의 말에 부동산 담당자인 마담 레스프리가 벌떡 일어나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듀끌로 씨가 가족이 떠난 빈집에서 하의를 다 벗고 지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앞 동 주민이 동 틀 무렵 상의만 입고 아래는 속옷도 안 입은 채 창밖을 우두커니 내다보는 듀끌로 씨를 봤다고 했거든요. 저는 그냥 잘못 봤겠거니 생각했었는데...”


경찰이 그녀에게 다시 질문했다.


“집에는 왜 와 보신 거지요?”


“열쇠를 반납하기로 한 날이 지났는데 연락이 안 닿았어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와봤어요. 문을 두드려도 소용없길래 열쇠로 열려고 했는데 열려 있더군요. 안으로 들어갔을 때, 참을 수 없이 고약한 냄새가 났고, 화장실 바닥에 듀끌로 씨가 쓰러져 있었어요. 얼마나 놀랐던지.”


나는 갑자기 줄넘기가 목에 감긴 고양이가 떠올랐다.


듀끌로 씨가 일주일 전에 죽었다면, 그 녀석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설마 부패해 가는 시신 곁에 내내 있었던 걸까?


“그 집에 고양이가 있었을 텐데, 혹시 보셨나요?”


“네, 있었어요. 제가 집에 들어갔을 때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바로 창문을 열었는데 그때 어디에 있다가 나타났는지 하얀 고양이가 창문 틈으로 훅 나가버렸어요.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아···! 그래서 사체에 손상이...”


경찰이 혼잣말처럼 말끝을 흐렸고 공교롭게도 그건 나만 들었다.


부동산 담당자는 자신이 겪은 일을 회상하며 쉼 없이 말을 쏟아내다 뒤늦게 몰려온 충격에 압도되어 화단에 몸을 기댔다.


남편은 그 여자의 말을 하나하나 유심히 듣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우리 넷 중 남편이 경찰인 줄 알 만큼.


그가 왜 저렇게 열심히 경청하는지 알 것 같다. 지금 이 장면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의 작품에 녹아들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장면을 과연 읽어 내려갈 수 있을까?


나는 엄청난 죄책감에 정신이 멍해졌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수군대는 사람들, 듀끌로 씨의 집을 들락거리는 하얀 우주복 남자들, 베란다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들.


수많은 눈이 나를 훑고 있었다. 그 눈들이 나를 욕하고 있다.


비난하는 시선을 피하려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점심 식사 때 와인을 너무 과하게 마신 탓인지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사위가 흔들린다. 고개를 돌리다 듀끌로 씨가 담긴 진회색 가방이 나의 눈 안으로 한가득 들어왔다.


- 오늘 당신을 안 만났다면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도 몰라요.


귓속에서 쟁쟁거리는 그의 목소리.


어디선가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참을 수 없이 큰 소리다. 가슴을 쥐어짜는 고통에 숨을 쉴 수가 없다.


순간 뒷덜미에 커다란 풍선을 단 듯 몸이 붕 떠오르며 하늘과 땅이 거꾸로 뒤집혔다. 쾅 소리와 함께 머리가 바닥에 부딪혔고, 눈앞이 깜깜해지며 진공에 갇힌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소리가 웅 하며 귓속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하자 귀 옆으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희미하게나마 시야도 돌아왔다.


남편의 팔에 안겨 축 늘어져 있던 나는 멀리 윗집 고양이 흰둥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는 우리 집 울타리 앞 화단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듀끌로 씨의 시체가 발견된 후, 사흘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보전 중이다.


내가 가여웠는지 남편이 흰 죽을 쑤어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바게트 샌드위치, 크루아상, 과일 등 끼니마다 새로운 음식을 대령하다 이젠 손수 죽까지 만들었다.


“정말 너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


“아무리 집 안이라도 그렇지. 아랫도리를 벗고 다녔다잖아. 그렇게 이상한 남자를 집에 들이지 않은 건 탁월한 선택이자 천운이었어. 후회할 일이 아니라고.”


“······”


남편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웬일이냐. 진짜. 애들도 나 몰라라 하고.”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이불을 제치고 몸을 일으켰다.


“다 했어. 걱정 마.”


남편은 내 등에 무릎을 받쳐 다시 못 눕게 막았다.


“죽 먹고 누워.”


직접 쑨 죽을 내미는 손을 마다할 수가 없다. 간장을 조금 떠서 흰 죽과 함께 입에 넣었다. 쌀알이 잘 퍼져 부드러웠고 참기름 향도 났다. 어떻게 밥알이 하나도 뭉개지지 않게 죽을 끓였을까 궁금해하는 데 남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윗집 흰둥이가 우리 집 베란다에 와서 빈 화분에 고인 물을 먹더라. 물 마신 후 울타리까지 뛰어오르는 데 깜짝 놀랐어. 그 뚱뚱한 몸으로 어떻게 점프를 그리 잘하는지.”


갑자기 식욕이 뚝 떨어졌다.


“이상해. 족히 몇 주일은 굶었을 텐데 오히려 살이 올랐어. 목에 줄넘기를 감고 있던 날 밤엔 앙상했었는데.”


속도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들고양이처럼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새끼 쥐와 새를 뜯어먹던 흰둥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체가 많이 손상되었다는 경찰의 말도 생각났다. 가슴속에 묻어 둔 일까지도.


나는 갑자기 욕지기가 치밀어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를 잡고 토하기 시작한 후 노란 위액까지 게워내고 나서야 구역질을 멈출 수 있었다. 입덧할 때만큼이나 심한 구역질이었다.


토기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던 남편이 내게 휴지를 건네곤 따듯한 물을 가져왔다. 스트레스 받을 때면 종종 있는 일이라 크게 놀라진 않았다.


그는 화장실 벽에 기대앉은 내 옆에 물컵을 내려놓고 한동안 나를 내려다보다가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날 이후 나는 육아와 살림에 온 에너지를 쏟았다. 원래도 아이들 음식에 열과 성을 다하는 편이었지만 예전보다 훨씬 더 공 들였고, 남편은 그런  영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또 냉전의 포문을 여는 사건이 터졌다. 강의를 마치고 귀가한 남편이 거실 어귀에 우뚝 서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얘가 왜 우리 거실에 있어?”


남편의 시선이 먹이를 먹고 있는 윗집 흰둥이에게 고정되었다.


“아침에 우리 집 베란다에서 물을 마시고 갑자기 집 안으로 들어오더니 안 나가네.”


“그래서?”


“한겨울이야. 집고양이가 밖에서 지내기 힘든 날씨라고. 매일 비도 오는데.”


남편이 갑자기 가방을 바닥에 패대기치고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국자도 떨어뜨렸다.


“요새 네가 제정신인 적이 있었느냐 마는, 정말 돌기라도 한 거야?”


“너 너무 오버다?”


“내가?”


“돌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거잖아. 건물에 진동하는 저놈의 락스 냄새 때문에 미칠 것 같아. 문틈을 아무리 수건으로 막아도 복도에서 새어 들어오는 저 락스에 섞인 썩은 냄새···”


“저 고양이를 키우면 냄새가 안 나?”


“저러다 쟤까지 죽을까 봐 그래! 이제 나 때문에 누군가 죽거나 망가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윗집 남자는 너 때문에 죽은 게 아니야! 그 사람은 속옷도 안 입고 집안을 휘젓고 다니던 변태 새끼라 가족들마저 질려서 떠난 거고, 그 충격 때문에 자살한 거야. 네가 뭐 그리 중요한 사람이라고 그 남자가 너 때문에 죽어? 착각 좀 그만해!”


“듀끌로 씨만의 얘기가 아니잖아!”


내 말에 흥분해서 날뛰던 남편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도 너랑 같은 일을 겪었어. 너만 상처받은 게 아니라고.”


애써 묻어 둔 이름이 떠오른 듯하다. 그 얘길 했던 게 아닌데. 남편은 여전히 나의 죄책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짐작도 못 하고 있다.


“나로는 안돼? 그냥 나만으로는 네 공허함을 채울 수 없는 거야?”


“그게 말이 돼?”


“왜 안 돼? 나한테 넌···”


민우는 말을 하려다 말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는 또 말을 맺지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에 있는 말을 꺼내 놓지 않고 있다.


“너도 네 공허함을 달래려고 글을 쓰는 거잖아. 서로 공허함을 달래는 방식이 다른 거야.”


“차라리 글을 써!”


“그놈의 차라리! 제발 내가 원치 않는 방안을 제안이랍시고 하지 마!”


“같이 살 방법을 찾아야지. 너만 살 방법을 찾고 난 안중에도 없이 이렇게 계속 멋대로 하면 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넌 내가 찾은 방법이 싫잖아. 나도 네가 원하는 방향으론 살 수가 없어.”


마주 선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먹이를 다 먹은 흰둥이가 소파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등을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


“그럼 헤어지는 수밖에.”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곳의 겨울은 거의 매일 비가 와서 해를 볼 수가 없는데 오늘은 모처럼 날이 맑다.


흰둥이는 그날 이후 오지 않았다. 남편이 이혼까지 들먹이니 안 내보낼 수가 없어서 내보냈는데 비가 많이 내리면 혹시나 녀석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베란다 앞에 우두커니 앉아 기다리게 된다.


나는 말수가 급격히 줄었고, 남편은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은 오늘, 오랜만에 아이들과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람이 좀 차가웠지만 햇빛이 좋은 날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아이들은 나의 새 메뉴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 조금 먹더니 시큰둥해졌다. 아무래도 토끼 고기는 입맞지 않나 보다.


내가 토끼 고기를 사다니. 엄마가 되면 정말 사람이 달라지나? 가죽이 벗겨진 채 고깃간에 진열된 모습이 끔찍해서 정육 코너를 피해 다니곤 했는데.


“먹기 힘들어? 잘라줄까?”


나는 고기용 나이프를 가져와 아주 작은 조각으로 토막을 내어 아이들 그릇에 놓아주었다.


언뜻 윗집 고양이가 물을 마시던 빈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빗물이 고인 화분 속에는 녹색 물이끼가 가득 껴 있고, 물 위에는 죽은 곤충들이 떠다니고 있다.


이런 물을 먹고 있었구나.


나는 더러운 물을 따라버리고 화분을 깨끗이 닦아 새 물을 채워놓았다. 테라스에 작은 집을 만들어 줄까, 집 안에만 들이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등의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의 식사가 끝나고 남은 고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울타리 너머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인기척이었다.


잠시 숨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순간 울타리 틈으로 어릿어릿 그림자가 스쳤다. 몸을 기울여 뒤에 누가 있나 살피려 했을 때 울타리 옹이구멍으로 사람의 눈이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꽥 질렀고, 눈동자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놈을 보려 몸을 담 위로 기울였을 때 누군가 우리 집 베란다 옆으로 난 지하 주차장 계단으로 빠르게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이들을 집 안으로 급히 들여보내고 놈을 쫓으려 밖으로 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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