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지금 고사리 지옥

by Blair

이맘때가 되면 제주시에서 안전 관련문자가 온다. 실종된 사람을 찾는 연락도 함께 온다. 추측 건데 고사리를 꺾다가 실종되었다는 연락이다. 때때로 지나가다 '고사리 꺾다가 실종되는 곳이니 조심하시오'라는 플래카드를 봤기 때문이다. 이런 안내문자를 받을 때마다 생각했다. '고사리가 대체 뭐길래 실종까지 되신 걸까?' 그런데 이번에 그 답을 찾았다.



오랜만에 부모님이 제주도에 오셨다. 이전과 분위기가 달랐다. 보통은 제주에 오시면 내일 어디를 갈까? 하고 여쭤보시는데,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고사리를 꺾겠다고 벼르고 계셨다. 그 모습이 굉장히 비상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날씨부터 걱정하셨다. 부모님께서 제주에 오시는 날 오전에는 비행기가 모두 결항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에 비가 내린대다가 하필 제주에는 강풍이 불었다. 참고로 그 전날밤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었는지 정원의 나뭇가지가 부러진 것을 보고, 대체 비행기가 제대로 뜨긴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후부터는 바람이 잦아들며 다행히도 부모님께서는 안전하게 도착하셨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비가 오면 고사리 못 꺾는데' 라니!








제주에 손님들이 오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손님 맞을 준비로 며칠이 분주한 것도 그렇지만 손님이 가신 후 그 허전함을 느끼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담되었던 것은 "이번엔 제주 어디 구경 갈까?" 제주에서도 괜찮은 여행지를 선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제주에 살고 도민이긴 하지만 고작 일년살이 한 우리라고 뭐가 다를까? 우리도 제주를 모르긴 매한가지인데 이번엔 또 어디를 가야 손님이 만족할까를 찾아내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부모님이 오셔도 마찬가지다. 효도관광이라는 큰 타이틀을 가지고, 어딘가 부모님 마음에 드실 만한 곳에 데려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사리 철은 달랐다! 고사리 꺾느라 제주 여행 따위는 별로 신경 쓰시지 않는다. 아침 먹고 고사리 점심 먹고 고사리 그래서 제주 여행할 시간이 없는 까닭이다.



다음날이 되었다. 부모님은 아침 일찍 기상하셨다. 그리고 날씨부터 체크하셨다. 다행히도 비는 멎었으나 여전히 흐리고 바람이 좀 분다. 그래도 부모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아침을 드시고는 바로 뒷산으로 출발하셨다. 아빠는 작년에 제주에 오셔서 고사리 좀 꺾어본 일인자(엄마)의 뒤를 잠자코 따르셨다.









두세 시간이 지났나. 오실 때가 된듯하여 간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 메뉴는 묵가루를 넣은 김치 부침개이다. 노릇노릇 굽고 있자니 아니나 다를까 뒷집에서 개 집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우리 집 뒤에는 집이 여러 채 있는데 그곳은 모두 개를 키운다. 낯선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정말 신나게 짖어댄다. 그래서 그 소리 덕분에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오시는 것도 알아챘다.



각각 가져가신 봉투 가득 고사리가 담겨있다. 하지만 엄마는 양손에 봉투가 들려있다. 추가로 가져간 봉지에도 가득 고사리가 있다. "아빠 엄마는 역시 대단해"






부모님께서 뒷산에 올라 꺾어온 고사리




문제는 이제부터다. 고사리는 꺾어 오는 것보다 그다음의 일이 힘든 것 같다. 꺾어온 고사리를 모두 삶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꺾어온 고사리를 못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 커다란 냄비나 채반이 있을 리 만무하다.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냄비와 작은 채반들을 모조리 꺼냈다. 냄비가 커다랗다면 한 번에 삶아도 될 텐데 냄비가 작으니 여러 번 삶고 꺼내야 한다. 워낙 많은 고사리라 위기이다.



그다음은 삶은 고사리를 말려야 하는데... 날씨가 영 시원찮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선선한 덕분에 급한 대로 대충 걸쳐 놓고 내일은 해가 뜬다고 하니 그때 바짝바짝 말려야 할 것 같다.








점심을 먹고 2차전을 시작하신다고 했다. 이번에는 나도 처음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가보기로 했다. 제주에 살면서 고사리도 안 꺾어보고 떠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다. 부모님이 이 정도 고사리를 꺾어온 것으로 봐선 분명 뒷산에 고사리가 가득일 텐데 나도 제주에 살 때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어디로 고사리를 따러 가셨나 했더니 정말 뒷산이긴 했다. 종종 산책 가던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 들어간 곳이 고사리가 없는 곳이었다. 분명 고사리가 가득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고사리가 없었다. 실망감이 컸다. "어서 빨리 고사리가 많은 곳으로 옮겨가요!" 나는 소리쳤다. 우리는 공간을 이동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5분 정도 걸어서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딱 봐도 수풀이 더 많이 우거지고 험난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각자 흩어지기로 했다. 아빠는 왼쪽, 나는 직진, 엄마는 오른쪽으로 나뉘어 고사리를 따보기로 했다.




까꿍! 착한 사람 눈에만 보여요





놀랍게도 그곳엔 고사리가 가득했다. 그런데 가시가 그것보다 100배는 많았다. 계속 깊숙이 들어가도 괜찮을까? 가시가 심하게 많아서 몇 번이고 나오고 싶었지만 고개를 조금 돌리면 그곳에도 고사리가 몇 발자국 걷다 보면 그곳에도 고사리가 있었다. 아... 이렇게 실종되는 거구나. 느낌이 왔다. 고사리 지옥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고사리가 눈앞에 보이니 멈출 수가 없다.



그러다 결국 나는 울뻔했다. 이마에 가시가 걸려서 상처가 나고, 다리에도 가시가 수도 없이 찔렀다. 무엇보다 점점 깊숙이 들어갔더니 부모님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 나 오늘 진짜 실종되는 건가? 중간중간 아빠와 엄마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이러다 정말 실종되겠는데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저 멀리 엄마의 주황색 모자가 보였다. "엄마~~~~~" 나는 거의 울부짖었다. 정말 고사리 때문에 뒷산에서 미아가 되는 줄 알았다.









고사리 꽃다발을 만들었다





종일 고사리를 캐고, 삶은 부모님께서는 결국 근육통을 얻으셨다. 그날 저녁부터 아프다고 호소하시더니 다음날 못 일어날뻔하셨다. 간신히 일어나 제주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입에서는 저절로 "아이고~" 소리가 나왔다.

역시 하루에 고사리 2차전은 절대 무리였다.



부모님께서는 젊었을 때부터 두 분이 뒷산으로 나물 캐러 다니시기를 것을 즐기셨다고 했다. 결혼한 지 40년 가까이 되시는데 처음 듣는 얘기다. 두 분은 제주에 있는 내내 고사리 얘기를 하면서 행복해하셨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사리가 가득한 제주도에 살고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사리 덕분에 효도했다. 고마워 고사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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