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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Feb 07. 2024

잠옷 대신 내복이라고?

어릴 때는 잠을 잘 때 입는 옷과 집에서 입는 옷이 구별되지 않았다. 늘어진 티셔츠와 입고 또 입어 늘어날 만큼 편한 바지 그것을 집안에서도 입고 잠잘 때도 입었다. 어릴 때는 꼭 잠옷을 입고 자지 않아도 잠만 잘 왔다.



그런데 우연히 잠옷을 입게 된 이후로는 밤마다 꼭 잠옷을 입고 잠들게 되었고, 게다가 아이를 낳고는 청결하고도 순한 옷을 고집하다 보니 순면으로 된 잠옷을 여러 벌 사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잠옷을 입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고결한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한번 알게 되면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들

나에게 그것이 잠옷이었다.



잠옷은 사진 않고 주로 선물로 받는다. 한참을 누가 나에게 선물을 사준다고 무엇을 원하냐고 말하면 '잠옷'이라고 말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여러 번 잠옷을 선물 받았다. 



내가 받는 잠옷의 기준은 순면 100%였다. 아무리 예쁜 디자인이라도 소재가 불편하면 손이 가지 않았다. 단지 순면 100%의 잠옷이 나에겐 최고의 잠옷이었다.







이번 방학에 육지에 나오며 시댁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머무르게 될 때면 집 정리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오고 가며 놓고 가는 짐들이 쌓이며 시댁에 있는 남편 방이 점점 지저분해지고 좁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정리 중이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면 내가 이전에 갖고 있었던, 그러나 전혀 기억나지 않는 그런 물건들을 보물처럼 발견하고는 한다.



이번 정리 중에는 내복을 발견했다.



뭐? 내복?? 맞다. 히트텍이 아니라 내복이다. 수년 전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위해 어머님이 사주신 내복이었다. 색은 무난하게 회색인데 무늬가 너무나 요란해서  평상시엔 좀처럼 입고 있기도 힘든 실내복이다.




아직도 이런 디자인 내복이 나오고 있다니...




어릴 때 내복은 필수품이었다. 내복을 초등학교 저학년 내내 안에 입고 다녔다. 그러다 3학년때인가 4학년 때 친척오빠집에 갔는데, 오빠는 더 이상 옷 안에 내복을 같이 입고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래서 따라 하기로 했다. 탈내복!! 이후로 겨울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잘 살았다. 원래 그맘때는 열이 몸에서 뻗친 시기라 그렇게 추위를 타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때는 한참 어리고 젊었다. 지금과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지금의 나는 늙어가고 있다. 심지어 나이 들며 몸에 열이 점점 사라져 버리는지 꽁꽁 싸매지 않으면 몸에 바람이 든 기분이다. 예전 내 몸과 같지 않다.


 

특히 요 며칠은 서울의 기온이 매우 추웠다. 제주에서는 상상조차 못 해본 추위에 겁에 질려버렸다. 제주의 집이 그렇게 춥다고 난리 쳤으면서 며칠 따뜻한 집에 살다 보니 옷이 점점 얇아졌고, 드디어 차가운 커피도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하필 서울에 머무는 일주일이 극도로 추웠다. 모자를 쓰지 않고 길을 걸었는데 찬바람이 얼굴을 에는 듯한 기분이었고 게다가 찬바람을 조금 쑀다고 머리가 어찌나 아픈지 모른다. 게다가 손을 꺼내놓으면 얼어버릴 것만 같아서 목도리와 장갑이 필수였다.



바로 이때다! 이렇게 추울 때는 내복이 정답이었다. 이때야말로 다시 옷 안에 내복을 겹쳐 입어야 하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을 입지 않던 내복을 옷 안에 꼼꼼하게 집어넣고 밖을 나섰다. 오, 확실히 한 겹을 더 입은 효과는 참 따뜻했다. 확실히 내복을 입고 안 입고 느껴지는 온도차이가 엄청났다. 아쉽게도 아래는 맞는 바지를 입어 내복을 착용할 없어서 아쉬웠다. 아마 아래까지 내복을 겹쳐 입었으면 훨씬 따뜻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내복은 제주에서는 그렇게 큰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제주는 겨울에 옷 안에 내복을 겹쳐 입을 정도로 그렇게 추운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고민을 한 끝에 내복을 가져가 잠옷대신 입기로 했다. 순면 100%의 내복은 잠옷으로 입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겨울 잠옷이 조금 낡아서 새로운 잠옷이 필요했는데 이로서 당분간은 다른 잠옷을 살 필요가 없어졌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내복을 꺼내 입게 될지 몰랐다. 그리고 잠옷으로 내복을 입게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미 가진 내복이라면 다시 한번 알뜰하게 입어볼까 한다.



이번에 내복을 발굴하며(?) 깨달았다. 역시 내게는 여전히 많은 물건이 남아있고 이것을 모두 소진하기에도 벅찬 것 같다.



앞으로도 가진 물건을 모두 소비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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