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김연수 옮김, 문학동네, 2019년 342쪽
사건에 푹 빠지거나 캐릭터에 이입되는 장편소설은 매력적이다. <돈키호테>에 빠져 보낸 여름 한 달, <연을 쫒는 아이>를 따라가던 날들은 재미만큼 여운도 길다. 짧은 이야기는 상큼한 맛이 좋다. 한두 장면에서 두서너 사람이 만드는 상황은 간결해서 선명하다. 이청준의 <눈길>, 김유정의 <봄봄>은 선명한 캐릭터와 함께 시대와 장소의 색까지 더해져서 멋지다.
유명한 국내 문학상은 거의 다 받은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는다. 그녀의 작품들은 읽기가 힘들다. 단편인데 캐릭터가 많고 사건이 복잡하다. 설상가상으로 문장이 복잡해서 자꾸 막힌다. 내 독해력을 못 믿어 작가의 최근 단편모음집을 구한다. 여전히 비유를 남발하고 문장은 복잡하다. 문장과 구성이 구질구질하잖아! 내 기준으로는 수작이 아닌데 그 작가와 작품에 호평일색이다.
짜증을 내며 읽던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의 글에 '레이먼드 카버'가 나온다. 미국 소설가, 대표작 '대성당'! 12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모음집 <대성당>의 표지가 너무 칙칙해서 읽지 않았는데 그녀 덕분에 읽는다. 술술 읽힌다. 문장이 깔끔하다. 상황 묘사가 간결하고 이미지가 선명하다. '칸막이 객실, 비타민, 기차, 열, 굴레, 대성당'. 이혼녀, 이혼남, 파산한 부부, 실직자, 알코올중독자, 외판원 등 금이 간 서민의 삶들이다. 1980년대 미국 서민의 삶을 한 컷 한 컷 본다.
레이먼드 카버는 1980년대 미국의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이끈 작가이다. 깔끔한 필력과 달리 작가의 삶은 자신의 소설 못지않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결혼생활도 순탄하지 못하고 알코올중독과 파산을 겪는다. 1988년 50세로 사망하지만 1983년에 퓰리처상 후보가 되기도 한다. 레이먼드 카버의 깔끔한 문장과 세밀한 묘사를 필사한다. 평이하지 않은 그의 삶도 곱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