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음나무처럼 가시를 버린다

by 송명옥

식욕이 없다. 아침 금사과도 반 개로 줄인다. 식욕만이 아니다. 매사에 시큰둥하다. 기다리던 영화 <헌트>도 아직 안 보고 미적거린다. 반짝이는 바다를 멀리서 바라본다. 느낌은 눈에 머물고 가슴까지 오지 않는다. 걷기도 외출도 귀찮고 말하기도 싫다. 서울나들이는 오며 가며 휴게소에서 서너 번 쉬면 여독이 없는데 이번 서울 여행은 이틀 정도 노곤하다. 갑자기 왜 이럴까, 내가 오미크론을 앓았나?

"음나무는 가시가 없어집니다." 숲해설가의 말에 눈이 번쩍 떠진다. 가시가 전혀 없는 매끈한 음나무를 본다. 개두릅잎을 따는 어린 음나무에는 가시가 많다. 가시에 찔려가며 개두릅잎을 딴다. 가시는 위협용이다. 음나무는 외부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가시를 웬만큼 자라면 지니지 않는다.

잎이 변한 가시, 껍질이 변한 가시는 쉽게 떨어지고 줄기나 가지가 변한 가시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음나무처럼 가시를 버리느라 아픈가? 가시 돋우고 살지 않으려고 진화하는가? 우울의 늪에서 잠시 벗어난다.



keyword
이전 21화달콤한 놀이와의 결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