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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좋아하세요? “

내 귤.

by 야식공룡



어쩐지 아침부터 꽤나 초조했었다.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지. 옛날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랫말 중에 있었던 가사 같기도 하고.

어젯밤에 야식 먹고 던져놓은 설거지거리도 그냥 두고, 축축한 빨랫감도 처리하지 않은 상태로 집을 나서버렸다.


어쩐지 오늘이 그날 같아. 지구멸망의 마지막 날.

왜냐하면 하늘이 너무 눈부시게 환하고 공기는 맑고 투명해. 바람도 한 점 안 불어. 지구최후의 날이라면 이쯤은 되어야지.


‘에이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될 것.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게 마련이다. 억지로 힘쓴다고 내 맘대로 세상일은 돌아가지 않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 건물 앞에서 물끄러미 이층을 올려다봤다. 자그마한 몸집의 차분한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가졌다. 잠깐동안 비스듬한 옆모습을 바라보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물러나 복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리창 너머로 멀리 J가 비친다. 한 번도 말을 걸어본 적이 없는. 인기 많은 J는 항상 입꼬리에 미소를 걸고 있다.

어쩐지 고민 상담하면 들어줄 것 같은 얼굴과 분위기를 가진 그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질문했다.


‘.. 진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건지 다시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 오고 말았다. 이런 괴로움은 아무리 몇 번을 겪는다 해도 적응이 안 된다.

몇 해 전에 심어놓은 씨앗이 싹을 틔우지 않아 해마다 텅 빈 화분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나 괜찮을까요?‘


갑작스레 문이 철커덕 열리면서 J가 걸어 나왔네.

마치 내 방문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예의 그 표정을 지으며 옆에 서서 참을성 있게 내 말을 기다리고 있다.


난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입꼬리에 어색한 미소를 반쯤 걸치고서, 이렇게 말해버렸다.




”혹시… 귤 좋아하세요?‘

“그럼요! 귤 좋아하죠!”


귤을 받아 든 J가 온통 치아를 시원스레 드러내고선 환하게 웃었다. 진짜 귤 좋아하나 보다.


‘안녕, 내 귤, 잘 가…..‘


난 오늘 이러려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귤을 정성스레 챙겨서 가방에 넣어온 것이다. 귤 그게 뭐라고.



이 변덕스러운 여름 날씨처럼 내 기분도 왔다 갔다 널을 뛴다. 창 밖은 여름이고 귤은 내 곁을 떠나갔고 난 또 커피가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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