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꿈에서 깨면 그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슬픈 꿈이었다, 너무 무서웠다'와 같은 감정만 남곤 하는데 그날의 꿈은 달랐다. 온종일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만큼. 참으로 이상한 꿈이었다.
남편과 나는 어떤 모임에 참석해야 해서 큰 승합차에 탔다. 그리고 앞자리에는 큰 딸 하리가 탔는데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리를 거칠게 억지로 태우려고 했다. 하리가 타기 싫다고 발버둥을 쳐서 뒤에서 지켜보던 내가 "제가 안고 탈게요."라고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다. 많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 한복판에서 하리를 애타게 찾고 있는 나. 하리가 없어진 것이었다! 차에서 발버둥 치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하리가 사라져 버렸다.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고 경찰서에도 찾아가 울부짖었지만 결국 찾지 못한 채로 꿈에서 깼다. 눈을 뜨자마자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하리를 꽉 껴안았다. 하리의 작은 몸이 내 품 안에 가득 차는 것을 느끼면서 긴장으로 굳어있던 몸이 겨우 움직였다. 슬프고 무서운 정도가 아니었다. 눈물이 날 틈도 없이 심장이 튀어나와 모든 것이 멈춰버린 기분이었다. 꿈이라도 이토록 끔찍한데 현실에서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심정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니 한동안 마음이 아파서 조금 우울하기까지 했다.
극장판 엄마 까투리가 개봉했다고 하여 하리랑 영화관 데이트를 하고 왔다. 모처럼 동생 없이 엄마랑 둘만의 시간을 갖게 해주고 싶기도 했고, 좋은 내용의 영화를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사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정말 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즐겨보는 애니메이션 중에서 엄마 까투리를 가장 좋아하는 나다. 엄마 까투리의 원작 동화를 쓴 작가 권정생 선생님도 좋고, 엄마 까투리도 좋고, 마지 두리 세찌 꽁지 꺼병이 4남매도 좋다. <극장판 엄마 까투리, 도시로 간 까투리 가족>은 아파트 개발로 위험해진 숲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엄마까투리와 꺼병이 4남매 이야기로 시작된다. 도시를 건너야만 하는 까투리들은 여러 위험한 고비를 넘긴다. 그러던 중 꺼병이들이 사라지는 일이 생기고 아이들을 찾던 엄마 까투리도 어려움을 만나 서로 헤어지게 된다. 아이들을 찾기 위한 엄마 까투리의 노력, 엄마를 만나기 위해 애쓰는 꺼병이들의 모습은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특히 엄마 까투리의 사랑과 희생은 눈물 없인 볼 수 없었다. 하리가 우는 내 옆에서 "엄마, 눈물 났어?" 하며 아주 큰 소리로 몇 번이나 묻는 바람에 다행히도 애니메이션을 보며 주먹 넣고 우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하리를 잃어버리는 꿈을 꾸고 며칠 후 엄마 까투리 영화를 봤다. 이상하게도 '잃어버린 것'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 날들이었다. 잃어버린 것을 찾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 그 애틋하고 절절하고 간절한 마음을 마음에 담고 있다 보니 나에게 저절로 묻게 되었다. 너는 혹시 중요한 것을, 또는 중요한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았니? 너는 무엇을, 누구를 다시 만나길 애타게 바라고 있니?
그 누구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말로 잃어버리고 헤어진 건 아니지만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소중한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했고, 진짜 떨어져 살고 있는 아빠가 생각나기도 했고, 두 아이를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내가 더 간절하기도 했다. 근데 잠깐, 여기서 아빠는 아무래도 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엄마 까투리처럼 사랑, 희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엄밀히 말해 잃어버려서 반드시 찾아야 할 존재도 아니다. 우리는 잃어버리고 헤어진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분리되었다. 엄마 까투리와 꺼병이들에게 도시라는 곳이 위험이었듯 우리 가족에겐 가정폭력이, 아빠가 위험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왜 나는 아빠를 떠올렸나? 왜 아빠가 생각났나?
하늘 아래 도시도 있고 숲도 있듯 아빠도 있고 나도 여기 살고 있으니 나는 아빠를 잊을 수가 없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두려워하면서, 아파하면서 살고 있다. 엄마 까투리처럼, 꿈속의 나처럼 자식을 찾는 간절함만큼은 아니지만 반대로 꺼병이의 마음으로, 자식의 마음으로 나는 아빠를 찾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평생 받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 넓고 따뜻한 사랑. 그것을 이토록 여전히 찾고 싶고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찌질하다. 삶이라는 것이, 부모와 자식 사이라는 것이 참 찌질하다. 그저 부모일 뿐인데, 자식일 뿐인데, 가족일 뿐인데 그 이유만으로 서로를 찾고 기다린다. 다시 돌아오기를, 다시 만나기를. 다시 사랑하기를, 다시 화해하기를.
아빠라는 껍데기는 다시 보고 싶지 않지만 진심 담긴 사과만은 기다리기에 지금도 나는 꿈을 꾸나보다. 아빠와 분리되고 결혼 후 초반에는 쫓기는 꿈을 그렇게 꿨었다. 이제는 찾고 찾는 꿈을 꾼다. 내가 조금 자랐나 보다. 도망가기보다 찾는 꿈을 꾸는 것 보니. 상처와 아픔, 과거와 두려움에서 도망가기보다 거기서도 사랑을 찾고 소망을 찾고 싶다. 소중한 나와 내 삶을, 내 아이들을 잃을 수 없다. 끝까지 찾고 견디며 살 거다. 내가 찾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찌질한 관계도, 지긋지긋한 삶도 내가 다시 찾을 때 만날것이다.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미움이 아닌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