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머그컵에 새겨진 로고처럼 내 삶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 시간이다. 엄마랑 나랑 동생에겐 일명 '도끼사건'으로 불리는 해이기도 하고, 4년 넘게 다녔던 직장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되어 일자리를 잃은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난 그해 말 7년 연애를 끝내고 결혼을 했다. 순서대로 하면 직장을 잃은 게 먼저고, 그다음이 도끼사건, 마지막이 결혼이다.
내가 직장을 잃은 그 시기에 기가 막히게 엄마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아빠의 밥줄이고 술 줄이었던 엄마와 내가 한순간에 나란히 일을 못하게 되니 가장 미치고 팔 짝 뛸 노릇이 된 건 아빠였다. 그 짜증과 불안이 그대로 엄마와 내게 향했다. 평소보다 술을 먹는 횟수와 폭력의 빈도, 강도가 나날이 강성해져 갔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 싶을 만큼 힘들었다. 나보다도 엄마에게 아빠의 분노와 욕설, 폭력은 점점 더 심각하게 행해지고 있었다. 이젠 진짜 엄마의 목숨이 위험하다 싶을 때, 결국 사건이 터졌다.
2017년 5월 27일 토요일 저녁이었다. 술에 취한 아빠가 집에 있던 손도끼를 들고 엄마를 위협하는 일이 벌어졌다. 엄마가 아빠를 피해 안방에서 우리 방으로 도망 왔고 동생과 나는 필사적으로 아빠를 막았다. 은빛으로 반짝이던 도끼날이 엄마의 허벅지를 비껴나갔다. 그날 동생과 내가 집에 없었다면 어쩌면 2017년 나는, 직장에 이어 엄마도 잃을 뻔했다. 집 밖으로 도망친 엄마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거의 30년이라는 그 긴 시간 속에 아빠의 폭력은 일상이었지만 우리가 직접 신고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빠른 시간 내에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이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땐 사색이 된 나와 동생, 그리고 아빠 곁에 있던 도끼와 여러 개의 칼들이 있었다. 아빠가 휘두르지 못하게 칼 하나를 내가 몰래 들고 있었는데, 경찰이 출동하여 문을 두드렸을 때 그 칼을 들고 뛰쳐나온 나를 보고 놀란 경찰 아저씨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곧 이어진 장면은 티브이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경찰 두 분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며 아빠를 현장에서 체포했고 우리는 급히 짐을 챙겨 경찰차에 올라탔다. 평소 우리 사정을 잘 아는 이웃이었던 2층 이모가 손을 덜덜 떨며 우리를 배웅했다.
경찰서에서 아빠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엄마와 나, 동생은 숙직실 같은 방에 분리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정폭력과 함께 흉기를 들었기 때문에 특수폭행죄, 그리고 과거에 저질러서 기록에 남아있던 폭행사건까지 죄목에 보탬이 되어 아빠를 구속하기 위한 긴급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했다. 보통 가정폭력 사건은 구속까지 가지 않고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기 쉬운데 우리 집 사건은 특별하고 긴급했던 것이다. 경찰들이 밤을 새워 일처리를 하는 동안 난생처음 집이 아닌 모텔에서, 아빠 없이 우리 셋이서 잠을 잤다. 아빠와 분리되어 조사가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에 경찰들이 방을 잡아준 것이었다. 얼떨떨하고 무서운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밤새 조사를 받고 며칠 후 구치소에 가게 되었다. 아빠가 구치소에 있는 동안 우리는 남은 짐을 정리하고 집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직장을 잃고 받은 실업급여로 아빠가 동네 이웃들에게 빌린 돈을 어느 정도 갚았다. 우리가 갑작스럽게 떠나도 욕 먹을거리를 남기고 떠나서는 안된다는 엄마의 말에 따라 굳이 우리가 갚지 않아도 될 빚을 갚고, 떠나기 전 만나야 할 몇몇 분들을 찾아가 우리 사정을 말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동생은 당시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 문제도 걸려 있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아빠가 찾아올 것을 대비해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고 조치를 취하기도 했고, 그동안 다니던교회와 여러 기관들, 이웃들과의 갑작스러운 이별도 조용히 남몰래 준비했다. 엄마는 아빠와 분리된 동안 가정폭력으로 인해서소송의 방식이 아닌 법에 의해 저절로 이혼이 성립되었다. 30년 남짓 고통받았던 결혼생활에서 드디어 벗어난 것이다. 자식들 때문에 참고 견뎠던 시간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아빠가 변할 것이라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이 단번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자식들은 어엿한 성인이 되었지만 아빠의 폭력은 변함없이 더욱더 강해져 갔기 때문에 우리는 긴급히 구출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아빠의 보복과 해코지가 너무나 뻔히 예상되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엄마와 나, 동생은 아빠가 구치소에서 나오기 전에 급히 떠나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거주할 새 집과 다시 다녀야 할 직장을 구하는 일이었다. 사회복지공무원과 복지기관의 도움을 받아 재정적인 부분을 지원받게 되었고 그 돈을 보태 기적적으로 집을 구하게 되었다. 엄마와 나는 먹고살아야 했기에 악착같이 직장도 구했다. 그러던 중 나의 거처와 안정을 걱정하던 지금의 남편과 시부모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급히 결혼식도 올리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은 나의 계획 속에 철저히 단 하나도 없던 것이었다. 아빠의 구속도, 우리의 피난도, 엄마의 이혼도, 나의 결혼도.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아빠는 우리가 함께 살았던 그 동네 그 집에 지금도 살고 있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여전히 술을 먹고 이웃들을 힘들게 하며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살아가고 있단다. 엄마랑 나랑 동생은 아빠와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우리의 거처는 아빠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숨긴 채로... 지금도 5년 전 우리가 왜 갑자기 떠났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를 사람들이 많을 거다. 이렇듯 나처럼 현재 우리 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마다 말 못 할 사정, 지워지지 않는 아픔 같은 거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고통받으며 어둡고 긴 긴 밤을 지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우리들 곁에 살고 있을 피해자들이 곳곳에 있을 거다. 이토록 아픈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이제껏 몇 편의 글을 써왔다. 지금. 바로. 여기. 버젓이.두려움이 번뜩이며 살아있지만 이제 내가 정말로 두려운 것은 아빠가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다. 지난 과거에 머물러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두렵다. 그런 나를 감추고 스스로 괴로워하다 그냥 그렇게 아픈 채로 살아가는 그런 삶이 두려울 뿐이다.
내 폰 번호는 5년 전 그대로다. 주변에서는 번호를 바꾸라고들 했지만 아빠의 소식을 내가 직접 듣기 위해서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동네 파출소에서, 아빠로부터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차단되어 울리지 않았지만 통화목록 속 떠있는 아빠의 부재중 연락도, 듣지 않은 음성메시지들도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나의 가정을 이루었지만 홀로인 엄마가 걱정되어 번호를 바꾸지 않은 이유도 있다. 솔직히 아빠의 소식을 알고 싶지 않지만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뉴스에서 접할 만한 사건을 미리 막기 위해서, 아빠의 행방을 내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바꿀 수 없었다. 또, 카톡 프로필은 5년째 아무 사진 없이 기본 배경 그대로다. 행여나 사진을 올렸다가 우리 거주지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노출될까 봐 그냥 마음 편히 프로필 사진을 올리지 않고 있다. 말하다 보니 아빠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던 앞선 고백이 부끄러워진다. 사실 두렵다.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찾아올까 봐, 엄마와 동생이 위험에 처할까 봐, 다시 불행해질까 봐 무섭다. 내 가정에, 내 남편과 자녀들에게 내가 겪었던 아픔 중 단 하나라도 느끼게 할까 봐 겁이 난다. 나는 지금도 매일 밤마다 잠긴 문을 몇 번씩이고 흔들어보며 확인한다. 지나가다 술병만 봐도, 술냄새만 맡아도 치가 떨린다. 사실은 두려운 것이다. 5년이 흘렀지만 상처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은 아마 내가 천국에 가서야 이루어질 일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매우 사랑받고 자란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을 듣곤 한다. 우리 엄마는 가정에 대한 상처가 많은 내가 자녀를 낳아 양육할 것이 심히 걱정되노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나는 생각해본다. 가정폭력의 상처를 내 아이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이유, 트라우마에 빠져 고통 속에 허우적 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나보다 내 아이들을 더 사랑하면서 '나'를, '과거'를, '상처'를 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한때 공황장애와 우울증 때문에 뜬 눈으로 며칠 씩 보내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을 보느라 우울할 틈도 없다. 상처를 이기기 위한 특별한 치료를 받은 적도 없고 누군가를 찾아간 적도 없다. 아이들을 낳고 깨닫게 되었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길 때 상처를 이긴다는 것을. 사랑함으로써 저절로 치유의 효과를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꼭 자녀를 낳아 키워야지만 상처를 이긴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다른 상황, 환경,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사랑할 누군가가 없는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본 적은 있는가? 작디작은 꽃 한 송이, 물고기 한 마리, 강아지 한 마리,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 누구든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기 시작할 때 놀랍게도 '내'가 살아난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혼자인 것 같은 순간들이 자꾸만 밀려와도 속으면 안 된다. 이 가을 하늘 떠다니는 구름 한조각도 날 향해 흐른다. 내 머리 위 뜨거운 햇살 한 줌까지 다 나의 것이다. 모두 나를 위한 것이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거짓이 없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다 티가 난다. 우리는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 그대로 있는 거다. 아픈 그대로, 힘든 그대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참지 않고서. 그렇게 도움을 청하는 거다. 소리쳐야 한다. 도움받고, 사랑받고, 내가 살아서 그다음에 다른 사람도 살리면 되는 거다. 나는 살았다! 나는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고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나와 같은 아픔으로 어둠 속에 갇힌 이들을 살릴 차례다. 나는 사랑을 대물림하는 엄마로, 사랑을 대물림하는 사람으로 다시 살고 있다. 누구나 그렇게 사랑을 대물림할 수 있다. 누구나 존재 자체로 사랑받기 합당하다. 어쩌면 내 글을 읽고 우울하고 불편했을지 모르겠다. 부디 그 불편함이 당신의 마음을 두드리길, 다시 사랑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