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쾌대의 <카드놀이 하는 부부>
붉은 꽃이 만개한 봄날의 정원, 앳된 얼굴의 부부가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야외 테이블을 덮은 미색(米色)의 보 위에는 적색 술이 담긴 양주병과 흐트러진 카드가 있다. 칠흑 같은 머리칼과 눈동자, 오뚝한 콧마루 아래 앙다문 붉은 입술, 술기운에 발그레해진 두 볼의 젊은 신부는 차라리 한 송이 꽃이다. 초록의 한복 저고리 위에 짙은 붉은 색의 깃과 고름 그리고 끝동은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심지어 손에 쥔 카드 뒷면에도 꽃이 그려져 있다. 맞은편에 반쯤 가려진 신랑은 시원스러운 이목구비에 짧은 머리, 햇볕에 알맞게 그을린 살갗 때문에 단단하고 건강해 보인다. 마치 한 송이 꽃을 돋아나게 하는 나무줄기 같다.
찬란한 신혼의 행복을 강렬한 색채로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처음부터 저를 압도하는 것은 부부의 시선이었다.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시선이 무심한 듯하면서도 다소 경직된 표정 때문인지 의미심장하다. 추악함과 번뇌를 모르는 무구(無垢)한 눈빛, 그 무구함이 오히려 그림을 보는 나에게 불안감을 안겨준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들, 행복에 취해 얼근한 날들, 그 어느 날에 이쾌대는 꽃 같은 아내와 함께하는 행복한 신혼의 순간을 화폭에 담아 불멸을 기획했다. 그림 속의 그 순간은 그들의 화양연화(花様年華)였다.
경술국치 3년 후에 출생한 이쾌대는 어린 시절 매우 유복하게 자랐다. 창원군수를 지낸 대지주의 둘째 아들로, 5천 평에 이르는 그의 집에는 교회, 학교,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고 전한다. 서양 문물이 막 들어오던 그 시절 야구를 즐기고, 유학지 일본에 집을 지어 신혼을 보내는 등, 보기 드문 유한계급의 삶을 산 듯하다. 그런데 열두 살 차이가 나는 형 이여성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였다. 중국 상하이와 난징을 떠돌며 독립운동을 하다 3·1운동 때 국내로 들어와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였다. 이런 형을 보며 자란 이쾌대도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운명>은 이쾌대가 ‘개인적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역사적 현실’까지 분명히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운명>에 이르러 무구했던 부부의 눈에 죽음과 이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20여 년이 흐른 후, 이쾌대와 유갑봉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기약 없는 생이별을 하게 된다. 이쾌대는 6·25전쟁 중 부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1953년 남북포로교환 때 어쩔 수 없이 월북을 선택한다. 그날 이후 부부는 다시는 살아서 만나지 못하게 된다. 1980년대 말 월북 작가 해금 조치가 있기 전까지 유갑봉은 그의 존재와 작품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며 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