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습보다는 복습

by 따뜻한 말 한마디

공황장애, 우울증, 그리고 휴직.
이 세 가지 폭풍이 지나간 뒤,
나는 이제 회복의 삶을 살고 있다.


분명한 건, 이 회복은 ‘완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질환을 어떻게 내 삶에 품고 가며,
덜 힘들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더 가깝다.

내가 어떻게 하면 덜 힘들까.

그 질문에는 절대적인 정답이 없다.

다만 하나, 내 마음이 편한 것이 정답일 것이다.

내가 찾은 정답은 예측 가능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인생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도 최대한 예측 가능한 루틴을 지키며 살아간다.


나는 매일 아침 6시 40분, 회사에 도착한다.
사무실 불을 켜고, 물 한 잔을 마신 뒤
그날의 할 일을 수첩에 적는다.
그리고 밤새 쌓인 메일함을 정리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건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내 하루의 가장 첫 번째 고정점이다.


평일엔 대개 저녁 6시에서 6시 반쯤 퇴근한다.
집에 돌아오면 비어 있던 위장을 채운다.
균형 잡힌 식단으로 하루의 첫 끼를 먹는다.
야구를 틀어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를 쓰고, 브런치에 올릴 글을 다듬는다.

이것이 내 주중의 루틴이다.
이 루틴이 무너지는 날이면, 불안감이 올라간다.

그래서 가능하면 사람들과의 약속은 잡지 않는다.


주말엔 반드시 헬스장에 간다.
몸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운동을 통해 고정된 무엇을 해낸다는 감각, 그 자체가 나를 안정시키기 때문이다.

온몸에 전해지는 자극을 느끼며,
"아, 내가 살아 있구나"라는 실감을 얻는다.

운동을 마친 후에는
일주일간 고생한 나에게 주는 작은 상처럼 맛있는 점심을 먹는다.
사람 많은 식당은 피한다.
내가 알고 있는,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한다.


언뜻 보면 지금의 내 삶은 심심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 좋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없고,
마음과 신경이 안정된 상태에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공황이 나를 덮치지 않게 할 수 있으니까.


언젠가는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도 즐길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하지 않는다.

나는 이 변화된 삶 안에서, 조금씩 나를 다시 만들어가고 있다.

이전 10화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하다